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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C Mar 25. 2016

잉카 콜라 vs 코카 콜라 : 페루 리마

잉카 콜라가 페루의 자존심으로 우뚝 선 순간.

외국을 이해하는 첫 번째 조건은
그 나라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 T.S. 엘리엇.

  기억을 하고 있는지. 20대라면 아주 어릴 적일 것이고 30대와 40대라면 생각이 날 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전 일(1998년)이지만 '콜라 대전(大戰)'이라 불릴 만큼 새로운 콜라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콜라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다. 콤비 콜라, 815콜라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불리는 코카 콜라와 펩시 콜라가 경쟁하던 시절이다. "콜라 독립"을 외치며 815콜라가 한때 큰 인기를 누렸지만 결국은 코카 콜라 앞에 무릎을 꿇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국산 콜라 시대도 끝을 맺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코카 콜라를 흔히 볼 수 있고 '콜라'라고 하면 코카 콜라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페루는 다르다. 페루에는 코카 콜라를 능가하는 '잉카 콜라(Inca Kola)'가 있다.

 


    장소 : 페루 리마에서의 이야기.  


  우여곡절 끝에 페루로 넘어온 나는 콜라를 마셨다. 잉카 콜라. 여행을 하며 하루에 한 캔 혹은 한 병 이상 콜라를 마셔왔던 나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경험 이었다. 어릴 적,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노란색'의 잉카 콜라를 보았고 언젠가 페루에 간다면 꼭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기에 페루로 넘어온 그날, 잉카 콜라를 찾았던 것이다.


  입 안에 느껴지는 약간의 끈적거림. 하지만 그 끈적거림이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코카 콜라보다는 단맛이 좀 더 강하지만 펩시보다는 약하다. 강하게 톡! 하고 터지는 탄산. 톡톡 튀는 탄산의 상쾌함이 어찌나 강한지 단맛으로 인한 끈적거림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레몬향의 상큼함과 파인애플향이 전해주는 시큼한 조화에서 우러나오는 전율. 코카 콜라와 견주어 봤을 때 결코 뒤지지 않는 맛이다. 색깔은 또 어떤가. 황금 제국 잉카를 상징하는 노란색.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코카 콜라와 잉카 콜라 페인팅. 페루에는 유난히도 코카 콜라의 광고가 많아보였다.


  툼베스에서 잉카 콜라를 맛본 뒤 리마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툼베스에서 리마까지 거리는 약 1300km. 버스를 타고 24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수시로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 위를 달렸고 수 없이 많은 작은 마을에 들러 사람들을 싣고 내려주기를 반복하며 리마를 향해 갔다.

  리마의 우중충함. 버스에서 내렸을 때 당최 여기가 화려했던 잉카 제국의 영광을 간직한 '페루'의 수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암울해 보였다. '우기(rainy season, 장마철)'라는 이유로 하늘에 잔뜩 낀 잿빛 구름. 거리에선 도무지 생기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축 쳐져있었다. 어제가 크리스마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리마 거리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한 가닥도 찾을 수가 없었다. 


※ 툼베스에서 리마로 가는 길. 태평양 바닷가에 배들이 떠 있다. 소박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어촌 마을.


※ 리마의 우중충함(왼쪽)과 밤의 대통령궁. 대통령궁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낮과 달리 밤은 도시적인 분위기가 풍기기도 했다.


   구시가에 위치한 싸구려 호스텔의 도미토리에 배낭을 내려 놓은 나는 그곳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한 커플이 나에게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고 호스텔에 머물던 8명이 함께 리마의 번화가로 식사를 하러 가게 된 것이다. 조금은 늦은 저녁 식사였다. 우리는 대통령궁 앞의 번화가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조용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며 각자 먹을 음식들을 하나씩 정했고 마지막으로 콜라를 주문했다. 논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테이블에는 2리터짜리 대용량의 코카 콜라 하나가 놓였다. 누구 하나 선뜻 콜라에 손을 대지 않고 있을 때 갈리시아에서 온 페드로가 말했다. 

  "난 코카 콜라를 먹지 않아. 잉카 콜라 먹을 사람?"


  페드로의 말에 이탈리아에서 온 안나도 잉카 콜라만 마신다고 했다. 페드로는 2리터짜리 잉카 콜라를 하나 주문했다. 테이블에 놓인 콜라 두 병. 잉카 콜라와 코카 콜라를 앞 두고 어떤 콜라가 더 맛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잉카 콜라'는 '코카 콜라'를 맛에서 결코 따라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맛에 있어서는 잉카 콜라 역시 뒤처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여행자로서 페루에 왔으면 코카 콜라가 아닌 잉카 콜라를 마셔야 한다는 '코카 콜라 배척론'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페드로는 맛의 문제를 떠나 코카 콜라가 자본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무분별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자신은 다른 곳에서도 코카 콜라를 절대 먹지 않는다며 코카 콜라의 '기업 윤리'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했다. 페드로는 코카 콜라가 자본을 무기로 전 세계 콜라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잉카 콜라는 그런 코카 콜라의 위협을 이겨낸 자랑스런 제품이라고 했다. 잉카 콜라가 '페루의 자존심'으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그렇게 검은 액체는 외면을 받기 시작했고 두 콜라를 두고 벌어진 설전(舌戰)은 마무리되었다. 

  

  "오우, 지져스!"

  음식을 기다리며 잉카 콜라 병을 천천히 살펴보던 페드로가 소리쳤다.

  모두들 페드로를 바라봤고 그는 콜라 병을 들어 보였다. 그가 우리를 향해 보여준 것은 잉카 콜라의 라벨이었다. 거기에는 필기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e Coca-Cola Company.
  

  모두들 경악했다. 페루의 '국민 음료'로 여겨지는 잉카 콜라. 페루만의 특색 있는 콜라라고 생각했던 황금빛의 잉카 콜라가 '코카 콜라 컴퍼니'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충격에 빠트렸다. '페루의 맛'이라고 생각했던 잉카 콜라마저도 코카 콜라 컴퍼니에서 판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 모든 것이 거대 자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페드로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컵에 노란색 액체를 채워 넣었다. 그는 컵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Cheers!"


  우리는 서로를 향해 컵을 들어올리며 웃었다. 이 또한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 잉카 콜라의 라벨.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노란색 사각 테두리 안, 아래쪽을 보면 필기체로 'The Coca-Cola Company.'라고 적혀 있다.




※ 잉카 콜라가 처음부터 '코카 콜라 컴퍼니'의 제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페루 음료 시장에서 코카 콜라는 '잉카 콜라'에 크게 밀렸고, 온갖 수단을 써 봤지만 잉카 콜라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코카 콜라 컴퍼니'는 잉카 콜라의 제조사인 '로빈슨'의 지분 59%를 인수했고, 그 이후부터는 잉카 콜라도 '코카 콜라 컴퍼니'에의 제품 중 하나가 되었다.(2016년 3월 현재, 잉카 콜라는 한국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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