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일 뿐이라고.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우리들이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모두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날 것이고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마주하지 못 할 것이다. 고생을 함께 한 동지일수록 깊은 정(情)이 든다고 했던가. 불과 2박 3일 동안의 동고동락이었지만 몇 달, 몇 년은 알고 지낸 친구가 된 듯했다. 기분 좋게 저녁을 함께하며 사막을 회상했고 서로가 지나온 도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감자튀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안주거리이다.
0 장소 : 볼리비아 우유니.
하나가 남았다. 모두들 맥주만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며 그 하나를 흘깃 쳐다본다. 미묘한 분위기. 안주를 하나 더 주문하기에는 어중간하다. 각자 자신의 앞에 놓인 술병만 비우면 이 자리는 끝이 날 것 같았다. 덩그러니 접시에 놓여 있는 감자튀김 하나. 유난히도 외로워 보였다. 남자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고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사라져버렸을 테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선뜻 손을 들이밀 수가 없었다. 나를 빨리 먹어치워 달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감자튀김은 애처로워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맥주를 마셨지만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에드손이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도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 안 먹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동안 머릿속에서 해야 할 말을 정리해야했다. 애매하다.
"안 먹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꺼려하는 것 같아. 지금처럼 말이야. 뭐랄까, 미묘한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고나 할까?"
"왜 그런 건데?"
에드손의 이어지는 물음. 왜 그런 걸까. 나는 그것이 한국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배려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정도. 마지막에 남은 하나를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 둠으로써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에드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브라질에는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을 먹으면 결혼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미신이지"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드리아나가 말했다.
"어, 정말? 아르헨티나에도 마지막 음식을 먹으면 결혼을 못 한다는 미신이 있는데."
아드리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드손은 "난 결혼 안 할 거니까, 내가 먹겠어"라며 하나 남은 감자튀김을 덥석 집어 먹어버렸다. 미신일 뿐이라고. 우리는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에 하나 남은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 그 하나를 꺼려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여럿이 음식을 먹을 때, 하나 남은 음식을 집어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우유니에서 있었던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 한 조각의 감자튀김. 그 덕분에 웃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하나 남은 음식을 먹게 되면 그것을 먹은 사람 혼자만 살이 찐다는 속설이 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