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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Dec 09. 2023

배터리 전쟁

충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잠시 사무실을 벗어나 교육을 들으러 갔다. 의무 교육으로 듣지 않으면 점수가 깎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면 중요했는데 그전에 뭐 때문에 바빴는지 이제야 겨우 갈 수 있게 되었다(다 핑계지만). 12월에 접어들어 간 교육이라 올해 열린 거의 막바지 교육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못 들었던 사람이 한 번에 몰리면서 정원 30명에 50명 이상이 왔다. 꽉 찼다. 


평소 교육 때보다 빽빽하게 앉았고 사무실에서 자리를 비운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막상 오니 꽤 좋았다. 평일 이 시간에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사람이 많은지라 선착순으로 자리를 앉아야 했는데 선호되는 좌석은 맨 뒷자리가 1번이요, 그다음이 창가나 문쪽이었고 언제나 가운데 앞쪽과 중간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맨 마지막에나 채워졌다. 대학생 때가 생각이 나는 것이 직장인들이 되어서도 똑같구나 싶었다. 


문제는 배터리였다. 원래도 공간이 협소한데 인원이 거의 2배 가까이 차니 충전하는 곳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나마 강의실 안에 몇몇 콘센트가 있는 곳이 다였는데 사람은 많고 콘센트는 한정되어 있으니 콘센트에 연결하는 것도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휴대용 충전기도 챙겨갔지만 하루 종일 받는 교육이라 원래의 배터리는 금방 소진됐고 휴대용 배터리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야말로 매시간 눈은 앞의 강사를 향했지만 머리로는 충전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틈날 때마다 간혹 비어있는 콘센트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충전을 했다. 그런데 콘센트와 내 자리와 비교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업무 전화라도 오면(마침 워치를 차고 있어서 전화 수신 여부는 알 수 있었다) 강의 시간에 콘센트 쪽으로 가서 핸드폰을 빼서 나가서 전화를 받고 다시 콘센트 쪽으로 가서 핸드폰을 꼽은 후 자리에 앉아 있는 행위를 반복해야 했다. 


그동안 사무실에서는 책상에 개인 콘센트가 있어서 배터리가 나가면 바로 충전을 할 수 있고 충전을 하면서도 동시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공간에 있으니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오래 쓰기도 해서 유난히 배터리가 쭉쭉 빠지는 느낌이라 더욱 초조했다. 첫날 교육 끝나고 약속이 있었는데 그전에 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한정된 콘센트에 내 것만 계속 꽂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교육 기간 내내 비어있는 틈틈이 핸드폰이랑 휴대용 충전기를 번갈아 충전해 가면서 겨우 버텼다. 


너무 한꺼번에 배터리가 소진되는 느낌에 교육 마지막 날에는 서비스 센터를 찾아갔는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특정 앱이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어서 평소보다 소진되는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작 범인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특정 앱이 회사에서 쓰는 보안 관련 앱이어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원인을 알게 되니 좀 나았는데 문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배터리를 바꾸어도 핸드폰을 바꾸어도 그 앱을 깐다면 소진이 계속될 것이므로. 


그래도 좀 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요즘은 어딜 가나 배터리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잘 되어 있지만 이번처럼 없는 경우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절약모드를 쓰고 백그라운드 데이터는 꼭 필요한 것만 빼고 사용을 금하는 등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확실히 예전보다 소진이 좀 더 천천히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편한 곳에서 무방비하게 배터리를 펑펑 써댄 것 같아 씁쓸했다. 좀 더 일찍 알아보고 좀 더 소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또 이제라도 겨우 사실을 알게 되고 배터리를 절약하면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바야흐로 배터리 시대라고 한다. 더 충전이 오래가는 배터리 개발에 한창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이제부터 배터리와의 전쟁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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