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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Feb 22. 2022

2월의 산타

레드향, 한라봉, 다꾸 세트, 공룡 레고 장난감

연초가 되면 회사에서 복지 포인트가 들어온다. 이 포인트로 한 해 동안 복지몰을 이용해서 물건들을 살 수 있는데 제법 쏠쏠하다. 주로 내 돈으로 사기는 아깝지만 한 번은 사보고 싶었던 물건들을 사곤 했는데 그런 제품일수록 샀을 때만 몇 번 써보고 창고에 고이 모셔두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떤 해는 벼르고 별렀던 다이슨 에어랩을 돈을 좀 더 보태서 사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코로나 발발로 마스크를 구할 수 없을 때에는 값비싼 마스크를 선뜻 구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아, 노트북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사양 좋은 비싼 노트북을 사기에는 포인트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양도 좋지 않은 최소한의 기능만 하는 노트북을 구매했다. 그래도 지금도 일부 기능은 하는지라 나름 잘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굵직한 소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회성 소비로 구매해 보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뭐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라고 나오는 것이기에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었다. 


올해는 2월에 포인트가 지급됐다. 보통은 3월이 되어야 나오는데 코로나로 인한 소비 진작을 위해 한 달 앞서 이번 달에 지급된 것이다. 보통은 지난해 사고 싶었던 것을 적어 놓았다가 3월에 포인트가 들어오면 하나둘씩 사곤 했는데 올해는 예상시기보다 빨리 들어왔고 지난해에는 무엇을 사야지 특별히 생각해 놓지 않아서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사라지는 여느 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무엇을 사지? 둘러보아도 딱히 당기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과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천혜향, 레드향 등 평소 마트에서 적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되어 선뜻 손대지 못한 과일들이었다. 그래 뭐 먹는 거라도 잘 먹자 싶어 과일을 주문했다. 그러자 부모님 생각이 났다. 언제나 고향에 갈 때면 넉넉하게 챙겨 주시던 과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부모님께 드릴 한라봉과 레드향을 주문했다. 그러자 조카들이 생각이 났다. 다어어리 꾸미기에 한창 빠진 조카 1과 공룡 흉내를 돌아다니면서 공룡 박사를 꿈꾸는 조카 2였다. 다꾸 세트와 레고로 만드는 공룡 장난감을 그렇게 하나둘씩 담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살 때는 불필요한 것도 많았는데 부모님, 조카들을 위해 하나둘씩 담으니 어느새 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그리고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주문 버튼을 눌렀다. 곧이어 메시지를 돌려 이러한 선물들이 갈 것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모두들 생일도 아니고 어버이날, 어린이날도 아닌데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리고 드디어 선물들이 하나둘씩 도착했고, 잘 먹고 잘 가지고 놀겠다는 인사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내가 샀을 때는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억지로 사놓고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가족들을 위해 소소하지만 필요한 선물들을 사고 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 '받는 것도 좋지만 주는 것도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싶었다. 마치 2월의 산타가 된 기분이었다. 비록 포인트로 구매한 소소한 선물들이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아무 날도 아닐 때 종종 산타가 되어야겠다. 받는 이들이 함박웃음 짓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어릴 때 12월이 되자마자부터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어떤 선물을 주실까 기대하며 12월을 보냈다. 25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인형들과 학용품들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12월 내내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나이를 먹게 되면서 12월의 산타가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 어떠랴. 산타가 나에게 올 수 없다면 내가 산타가 되면 되지. 2월의 산타, 9월의 산타가 되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주면서 기쁨을 만끽하면 되지. 


날씨는 여전히 춥고, 오미크론 확진자 증가로 엄혹한 환경은 지속되고 있지만 산타 놀이로 마음 만은 따뜻해졌다. 아마 복지 포인트를 가장 유용하고도 행복하게 쓴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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