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문세 아저씨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요즘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그 나이 또래의 팬들만큼은 아니지만, 직접적이고 관능적이어서 음미하기보다는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노래들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들을 때마다 무언가 감상을 한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들이란 생각이 들어 이따금씩 그분의 노래를 찾아 듣곤 합니다.
특히 가을만 되면-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내 또래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가을이 오면'이라는 노래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고 귀가 끌리게 됨은 인지상정인가 싶습니다.
가을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계절인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가을은 '봄'만큼이나, 아니 '봄'보다 더 많은 얘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봄과 여름에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꼭 끌어안고 겨울이 오기 전에 빨갛게 그리고 노랗게 형형색색의 찬란한 색으로 내뿜다가 산화하여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낙엽을 밟으면 꼭 안고 있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바스락'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울하게도 색의 역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풍잎을 보고 빨갛다고 하고, 은행잎을 보고 노랗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반사된 빛, 즉 그 물체에 흡수되지 않은 빛깔이라는 것인데요, 쉽게 말하면 단풍잎은 빨간색만 없고, 은행 잎은 노란색만 없다니 안타깝고 아쉬운 일임에 틀림없는 일인 것 같네요.
가을만 되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의 색은 어떤가라는.
형형색색의 색들이 사실은 그 실체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사된 색이라면 나의 반사된 색과 실체의 색은 어떠한가 하는 그런 것 말이죠.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를 위해서, 사회생활을 위해서 원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내가 보는 나'는 그대로 둔 채'남이 보는 나'라는 그림자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의 색은 어떤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되면서.
그런 의미에서 그림자는 슬픕니다. 그리고 외롭습니다. 나 혼자만이 보듬어줄 수 있고 안아줄 수 있어 그림자는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혼자 사는 사람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라고.
형형색색의 가을, 찬란한 가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함에도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게 되어 가을에 괜시리 미안하네요. 이제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작정 낭만적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그냥 슬프고 외로운 내 그림자를 이번 가을에는 많이 보듬어주고 쓰다듬어 주려합니다. 마치 언제나 가을은 그렇게 보내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