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핑크스|제3화. 부러진 나무가 회초리가 되다
나는 지금 어떤 멋으로 살고 있을까?
올해는 태풍이 유난히 잦게 느껴진다. 그중에서 태풍 ‘타파’를 잊을 수 없다. 그가 지나가며 비보다는 바람을 엄청나게 뿜었다. 타파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온몸으로 바람을 뚫고 공연장에 간 것과 관람 도중 꺼진 정전사태 때문일 것이다. 귀신처럼 손전등을 얼굴에 비추며 당황하던 마술사 분과 예상치 못한 일대 정전이 코믹한 다른 무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짜리 태풍 사건으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타파님 오신 날’은 다음 날에도 나에게 새로운 의미의 무대를 펼쳐주었다. 스핑크스가 부는 콧바람에 잠에서 깨자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 졌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으로 뛰어나갔다. 태풍이 소멸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바람은 한 줌도 잡히지 않았다. 구닥다리 다리에 시동을 거는 찰나에 쓰러진 나무들을 보았다. 끝없이 높게 하늘을 잡았던 나무가 두 동강이 났거나 터전이던 땅에서 강제로 뽑혔다. 안타까운 현장에서 나도 모르게 길을 멈췄다. 위풍당당한 절대자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다. 이렇게 굵고 높게 선 이도 태풍 앞에는 미약한 아기가 될 수 있다.
다시 내 삶의 운전대를 잡고 달렸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최후로부터 최대한 멀리 내달렸다. 숨을 몇 차례 내뱉기가 무섭게 다시 섰다. 튼튼하게 서 있는 다른 나무들이 자꾸 나의 눈에 밟혔다.
어째서 누구는 멀쩡하지?
스핑크스가 그곳에 숨어서 묻는다. 자는 줄 알았는데 그새 따라왔다. 그의 질문을 안고 심장이 뛰도록 두 바퀴를 달렸다. 심장은 원래 뛰는데 뛰어야 뛰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온 큰 나무 무덤가. 이과생의 답은 뻔하다. 큰 나무는 면적도 넓으니 바람도 더 많이 받는다. 나무가 높을수록 바람의 강도도 더 세게 받을 것이다. 그가 원한 답이 아니다. 스핑크스가 이빨을 드러낸다. 비슷한 크기인데 왜 누구는 부러지고 누구는 단단히 서 있을까? 같은 시기에 심은 나무라면 다 쓰러져야 정상 아닌가?
역시 멋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멋이 존재한다. 겉멋과 속멋. 겉멋은 드러난 멋이자 남들이 알거나 안다고 착각하는 멋이다. 속멋은 내실을 다지는 멋이자 자신이 아는 멋이다. 나무에도 멋이 있다. 그들에게는 감미로운 햇살과 양분이 가득했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겉멋에 빠진 나무는 크기에 치중했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몸집만 불렸다. 능력 이상의 빚까지 긁어서 가공했다. 속멋을 찾는 나무는 객관적인 나를 잘 안다. 적절한 성장과 더불어 지지하는 뿌리를 지구의 코어 core까지 닿도록 노력한다.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겉멋 나무는 매일 자신을 과장했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지만 속멋 나무는 나를 지지하며 매일 자신을 뛰어넘었다. 똑같은 햇빛과 양분이 아닐 수도 있다. 조목조목 따지며 불평하고 싶겠지만, 태풍은 골라서 바람을 선물하진 않는다.
문득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두 명의 중환자가 병원에 입원했다. 창가 쪽 환자는 치료를 위해 하루 한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맞은편 환자에게 밖의 풍경을 설명해주었다. 멋들어진 작은 호수와 화목한 가족, 한적함을 즐기는 오리 떼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맞은편에 누워있는 환자는 마치 자신이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맞은편 환자는 점차 욕심이 생겼다.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직접 볼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창가 쪽 환자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겼다. 그는 긴급 호출 버튼을 찾았지만 맞은편 환자는 자는 척할 뿐이었다. 결국, 창가 쪽 환자는 죽었다. 그리고 맞은편 환자는 며칠 뒤에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힘들게 앉아서 창가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맞은편 건물의 어두운 벽만 보일 뿐이었다.
난 창가 쪽 환자의 멋을 보았다. 겉멋만 가진 사람이 태풍을 맞았다면 허황하게 가공된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그 격차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겉멋의 그는 세상을 가리는 벽과 자신을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가 쪽 환자는 속멋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실적인 나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가리는 벽에 아름다운 상상의 벽화를 그렸다. 나와 맞은편 환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
나를 지지하는가?
나를 지지(더러움을 나타내는 아기 용어)하는가?
뒤를 돌아보니 스핑크스가 사라졌다. 작게 중얼거렸다. "스핑크스, 너도 지지." 성난 표정으로 다시 나타났다. 귀도 밝은 녀석. 도망치듯 새로운 무대로 구닥다리 시동을 걸어본다.
난 어떤 멋을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을 사용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