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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Jan 14. 2020

아내 사랑 실천기|시작점에 서다.

여섯 번째 프러포즈에 도전하다 1편




아무리 잘난 과거도 현재를 이기진 못한다.



나의 여섯 번째 프러포즈 때문에 올림포스 신전이 시끄럽다. 제우스를 중심으로 하데스, 포세이돈, 아레스 등은 왜 그러냐고 타박한다. 헤라를 중심으로 헤르메스,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등은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사실 사람들도 내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두 가지 말이 공존하는 걸 보니 프러포즈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러게. 난 왜 그랬을까? 일단은 오기 섞인 마음이 있다. 결혼식장에 온 많은 사람 앞에서 말했던 나의 선언문을 지키고 싶었다. 누가 뭐래도 말한 것은 꼭 책임지고 싶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시작점을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지도에는 사건마다 크고 작은 점이 찍힌다. 그 점끼리 이어진 게 삶이리라. 부부의 첫 시작점을 잊는다면 함께 지었던 마음의 집은 허물어진다. 마치 머물지 않는 집은 빠르게 폐가가 되고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뒤끝이 심한 제우스가 바쁘게 만드는 터라 미리 준비했음에도 프러포즈 당일까지 정신이 없었다. -아내가 6년 만에 처음으로 눈치를 챘다. 아침에 너무 부산스럽게 준비했나 보다.-





다행히 헤르메스가 내가 주문한 액자를 제때 가져다주었다. 항상 선물은 고민의 연속이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건 생일선물로도 받을 수 있으니 프러포즈 데이 때만큼은 내가 신중히 고른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물론 평소의 그녀였다면 안 샀을 물건이겠지만 잠깐이라도 웃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셀프 액자 무드등

스스로 그려서 만드는 무드등이다. 재량권(?)이 높은 선물이라 확 마음이 갔다. 메시지를 남길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액자 뒤편에 원하는 그림을 붙이고 따라 그리면 되어서 결과의 질도 높았다. 밤에 켜놓고 있으니 뿌듯한 분위기가 되었고 아내도 좋아했다.  물티슈로 지울 수도 있으니 꼭 도전해보길 추천한다.

 

깜냥이를 맡기고 둘이서 버스를 탔다. 얼마 만에 얻은 둘만이 시간인가! 그녀와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 새벽까지 준비했던 작년 사진 모음집을 폰으로 보여주었다. 작년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우리의 추억으로 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의 만족도는 점점 올라갔다. 오예!     





신당동 떡볶이타운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레베카> 뮤지컬을 보러 갔다. 안주인과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에 관한 노래를 부르며 서로 다른 의미로 레베카를 외치는 모습은 정말 전율이었다. 중간쯤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난 과거도 현재를 이기진 못한다.’ 레베카의 내용과 상관없이 나의 영감(님)이 준 한 줄이다. 그래. 아무리 과거에 아내에게 잘해줘도 지금 헛되이 행동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랑은 과거와 같거나 그 이상인 현재여야 한다. 선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괜히 정돈해본다. 거기 몰래 따라온 제우스 나가!   




      

피에쑤. 막심 드 윈터 역을 맡은 카이가 밖으로 나와서 한 명씩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해주었다. 물론 난 관심이 없었지만 아내는 달랐다. 후다닥 무리에 끼더니 끝내 악수까지 한다. 얼굴까지 상기된 그녀가 괜히 내 가슴을 치며 까르르 웃는다. 카이의 뒤통수를 끝까지 째려보다가 이내 눈에 힘을 풀었다. 흥! 괜찮아. 난 신사답게 고급 악플을 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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