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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Nov 19. 2020

'좋아해'라고 말해봤나요?

말할 수 없이 좋아하는 걸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곡을 만났다. 

지친 마음을 업고 집으로 향하다가 라디오를 켰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나를 녹였다가 다른 나의 거푸집에 부었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안전띠가 힘겹게 잡았다. 

이 순간만큼은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춤추지 못하게 안전띠를 단 것만 같다. 

나는 수십 년 만에 지구를 찾아온 혜성처럼 드물게 좋아하는 노래가 생긴다.

마치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잊었던 벗을 만난 기분이다. 





처음 이 감정을 느낀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어린 학생이었다. 

밤에 공부한다고 앉았지만, 라디오를 들으며 감성을 키우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들은 선율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가사 하나하나 놓칠세라 바싹 곤두서서 들었다. 

가사를 외울 줄 모르는 내가 처음 듣고 한 번에 외운 유일한 노래였다. 

진짜 좋아하면 내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 후로도 내가 달라 보이는 경험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만화책을 교과서 사이에 끼워서 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짝꿍이 나를 세게 흔들었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드니 모든 친구가 나를 보고 있었다. 

짝꿍 손가락이 앞을 가리켰다. 

선생님은 얼마나 불러야 대답하느냐며 언짢아했다. 

짝꿍도 “선생님이 계속 부르는데 안 들려?”라고 핀잔을 주었다. 

처음 경험하는 몰입의 세계였다. 

주변이 사라지는 집중의 세계가 신기했다. 

그 뒤로도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 계속 힌트를 주었다.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에 물을 끼얹는 용기가 생겼다. 

현재 시간도 물에 녹이는 힘을 얻었다.      









노래가 끝나서 귀를 쫑긋 세웠다. 

대체 이 노래 제목은 뭘까? 

하지만 진행자는 말없이 다음 사연을 읽어주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평소였으면 휴대폰으로 바로 찾았겠지만, 하필 오늘은 집에 모셔두었다. 

안 되는 영어 가사를 되새김질하며 집에 들어가자마자 검색창을 열었다. 

다행히 후렴구에 반복되는 가사가 제목이었다. 

<Why can't we be friends?>을 들으며 다시 엉덩이가 들썩였다. 

https://youtu.be/z5OXON8vIaA

해당 음악(광고 있음)은 Smash Mouth의 커버곡이며 나를 들썩이게 했던 곡은 원곡이 아닌 이 곡이었다. 




좋아하니까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그리고 세 가지에 놀라게 됐다. 

그들은 War라는 펑크밴드로 1975년에 작곡한 노래였다. 

태어나기 전에 만든 곡이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흥미로웠다. 

또, 그들은 인터뷰에서 인종차별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겉모습이 아닌 속 모습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신나는 노래가 차별에 맞선 곡이라는 점이 신기했고 지금 틀어도 어색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는 미국과 소련 우주선이 최초로 연결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틀어졌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합동 우주 프로젝트였다. 

<Why can't we be friends?>는 냉전 시대가 협력 시대로 바뀌는 증거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우주를 두고 친구가 된 것이다. 

역시 좋아하면 닮게 되어있다. 

나는 좋아하는 것과 얼마나 닮았을까? 





<변산>이라는 영화를 보면 노을을 사랑한 소년과 그가 바라본 노을을 사랑하게 된 소녀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나온 시를 들으면 시가 쓰고 싶고 랩을 들으면 랩을 배우고 싶어 진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     


훗날 소년이 소녀에게 말한다. 


너 내가 왜 노을을 좋아했는지 알아?
저기 저 수평선 위에 노을이 없을 때는 그냥 휑하니 빈 하늘이잖아.
근데 노을이 지니께 하늘이 꽉 차더라고.
그 꽉 찬 하늘이 좋더라.     


좋아하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서서히 찬다. 

다만, 내가 다른 곳으로 바쁘게 퍼내고 있는 것뿐이다.     



Sometimes, I don't speak right.
가끔 내 말이 맞지 않지만     

But yet, I know what I'm talking about.
내가 무슨 말하는지는 알아     

-<Why can't we be friends?>의 가사 일부          






https://brunch.co.kr/@leichin/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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