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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Dec 15. 2020

나는 브런치 알람을 끄고 말았다.

얼마나 통제되고 있을까?

브런치 알람은 내 말초신경과 연결되어 있다. 

깊은 진동음이 두개골을 자극할 때마다 후다닥 휴대폰을 잡는다. 

왕비 진맥을 잡기 위해 실을 맨 것처럼 나는 브런치에 칭칭 실을 감은 것 같다. 

-다섯 글자로 말하면 ‘중독 중 중독’이다- 

내가 올린 글에 반응이 달린다.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피드백은 내게 좋은 글 교정이 된다. 

알람에는 응원과 자기 성찰이 공존한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짬짜면과 뭐가 다를까. 

역시 한번에 먹는 기쁨은 포기하기 힘들다. 





브런치 알람은 내게 스승이 된다. 

무심코 본 작가 글에 감동하곤 한다. 

갓 나온 빵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한입에 베어 무는 쾌감일까? 

그런 글을 보면 내 영감(님)이 허리를 곧게 편다. 

나는 형편없는 글도 본다. 

그런 글 역시 내겐 스승이다. 

원래 남은 비판하기 쉬운 법이다. 

그 따가운 시선을 잠시나마 내게 돌릴 수 있다. 

눈에 익은 문제는 내 글을 쓸 때도 주의하게 된다. 

때론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 고민도 한다. 

내 식대로 짧게 끼적이면 금세 한 꼭지가 될 뼈대로 바뀐다. 

알림은 독특한 스승도 알려준다. 

좋은 글이지만 내 취향이 아닌 글을 소개한다. 

책이었다면 관심 없다며 덮었겠지만, 브런치는 읽게 한다. 

먹기 싫은 피망을 잘게 자르고 밥에 숨겨서 떠주는 것 같다. 

물론 목 넘김은 별로지만 내 세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모두가 소중한 스승이다.





그랬던 내가 저번 주부터 브런치 알람을 껐다. 

알람은 편한 기능이지만 퇴근 후 알람이 올 때마다 확인하다 보니 내 일상이 무너졌다. 

일부러 휴대폰을 꺼두기도 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알람이 없는 세상은 정말 조용했다. 

며칠은 적응되지 않아서 손이 자꾸 휴대폰에 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온전히 내 시간을 쓰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내 세상을 조절하고 싶었다. 

울릴 때마다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낼 수 있는 시간만큼만 여유 있게 읽으려는 것이다. 

이건 비단 브런치 알람만의 일이 아니다. 

인생 역시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야 행복해진다. 

사람은 자기 통제권이 있다고 느낄 때 행복을 경험한다. 





미국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스위치가 있는 신호등과 스위치가 없는 신호등 중에 어느 것에 더 만족할까? 

사람들은 스위치가 달린 신호등을 선호했다. 

스위치를 눌러서 신호가 빨리 바뀌니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신호 길이는 두 집단이 모두 같았다. 

다만 스위치가 달린 쪽은 내가 조절한다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행동해서 바뀐 거라고 믿는다. 

자기 통제권은 나를 바꾸는 힘을 주고 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존 윅>이 생각난다. 

주인공은 병든 아내가 죽는 고통을 얻는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마지막 선물인 강아지마저 죽임을 당한다. 

그러자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하는 내용이다. 

사실 아내나 강아지나 똑같은 죽음일 뿐이다. 

하지만 ‘통제’ 어르신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아내의 병은 손을 쓸 방법이 없다. 

통제할 수 없어서 슬픔이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하지만 강아지는 다르다. 

내 도움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존재다. 

내가 통제할 수 있음에도 남이 마음대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이러면 분노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잡아먹게 된다.




 

그렇다면 자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지고 누리고 경험하는 것을 통제와 비非통제로 나눈다면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남이 아닌 내가 확신하는 통제영역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행동과 행복이 함께 나를 기다린다. 

부디 통제된다고 믿는 삶이길.


당신의 인생을 당신의 통제하에 두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놀라운 것은 더 이상 책임을 돌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비행 공포>, <죽음의 공포>를 쓴 소설가 에리카 종 Erica 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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