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창고 Jul 06. 2021

놀이터에도 알이 있다.

유치원생 아이가 스승입니다.




아이에게 놀이를 뺀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초원을 달려야 할 얼룩말을 조그만 방에 가두는 행위이고 사자를 강제로 채식주의자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건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저는 깜냥이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육아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아이의 행복한 시간을 저울질하다가 타협점을 40분으로 잡았습니다.

아이를 40분 일찍 하원 시킵니다.

원래 계획은 집에서 ‘아빠와 같이 놀자’였는데 아빠랑 노는 것보다 또래 친구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깜냥이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나옵니다.

“아빠”를 부르자마자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들으나 마나입니다.

초롱초롱하고 기대에 찬 눈빛은 가장 타당한 근거를 대고 있으니까요.





놀이터로 후다닥 뛰는 아이의 발걸음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 찹니다.

하지만 오늘은 노는 친구가 적습니다.

여섯 살만 되어도 태권도, 수영, 영어, 교육센터, 피아노, 미술, 발레 등등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들이 넘쳐납니다.

사교육을 안 하면 친구를 만나기 힘듭니다.

물끄러미 깜냥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놀이터를 이리저리 뛰면서 친구들을 찾다가 심심하면 우거진 나무에서 벌레나 열매를 가지고 놉니다.

주말에 아빠, 엄마와 있을 때는 “심심해!”를 입에 매번 묻히고 다녔는데 정작 혼자 노는 유치원 놀이터에서는 심심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젠 정말 심심해졌는지 아이들이 나오는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플까요.

하원 하는 아이들 이름이 스피커로 울립니다.

아는 친구 이름이라도 나오면 놀다가도 다시 문 앞으로 뛰어갑니다.

그리고 짱구의 액션 가면 자세를 취합니다.

나온 친구는 알은체하지만 학원 차로 바로 가야 합니다.

또다시 혼자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무리의 친구들에게 나뭇잎 굴러가듯이 자연스럽게 갑니다.

학원을 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입니다.

수줍음이 많은 깜냥이는 선뜻 다가가기 힘들어 보입니다.

괜히 옆으로 가서 모래를 파고 시선을 끌기 위해 재미있다는 듯이 뜁니다.

하지만 함께 노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갑자기 한 아이가 엄마에게 받은 간식을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깜냥이 것은 없습니다.

깜냥이는 같이 있기 멋쩍어서 다른 곳으로 뛰어갑니다.

그래도 아이의 시도가 고맙습니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때도 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허탕입니다.

결국, 저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낚시의 낚도 모르지만, 친구를 낚시하는 기분입니다.

내일은 대어를 낚을 수 있기를.

그러고 보니 조금씩 자신의 알을 깨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아빠가 된 지금도 계속됩니다.

대체 알은 몇 겹일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제가 던진 돌이 물결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