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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Aug 06. 2021

책의 내용을 다 기억하나요?

1%의 변화

 






독서, 그 말이 어색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매년 100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요즘은 할당량을 채우는 기분이다. 물론 책을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의자에 앉아 작게 튼 재즈와 커피와 책과 초록색으로 물든 나무가 함께 한다면 나에게는 그보다 큰 행복은 없다. 여러 분야를 일부러 골라 읽는 것은? 오케이! 앎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정 분야의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책을 몰아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깊이 알아가는 재미도 흔쾌히 수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왜 책 읽기에 고민이 생겼을까? 바로 문제는 기억이다. 책을 놓고 돌아서면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게 참기 힘들다. 상황에 어울리는 내용을 찾아 머릿속을 헤맨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도 설단 현상처럼 입에서만 맴돌거나 정확한 출처를 대지 못하고 어렴풋이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의 나를 보면 남인 양 지나치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여러 책의 내용을 척척 연결하여 말을 이끄는 지인이라도 만나면 자괴감은 커지곤 했다.  





     


‘166-0=0’ 


166분을 투자해서 끝까지 읽고 덮으면(‘0’) 기억은 0에 수렴한다. -밀리의 서재에 있는 인문 분야 책의 완독 예상 시간에 근거하여 만든 공식이다.- 평생 글을 써야 하는 작가에게는 이 공식은 치명적이다. 스스로 만든 생각과 연결할 지식이 공허하게 느낀다. 책을 덮을 때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것처럼 망각이 찾아온다. 주변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고민을 토로했더니 그들도 나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놀이(?) 중이 있었다. 사람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책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했다.


읽는 행위와 내용을 소화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차원이다. 때론 읽고 정보만 얻어야 하는 책도 있지만 진중하게 읽는 책이라면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기억에 남는다. 우선 내가 시도했던 방법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좋은 책은 필사한다. 필사하는 동안에는 중요한 부분이 기억에 남았고 설명도 가능했다. 하지만 필사를 하면서 책의 앞부분을 잊기도 하고 까먹은 내용을 다시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필사 후에는 그 책을 안 보게 되는 의욕 저하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좋은 문장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다.

둘째, 타이핑으로 기록하고 반복해서 본다. 좋았던 부분을 기록하고 내 생각도 짤막하게 쓴다. 검색을 통해 언제든지 원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과 인쇄물을 틈나는 시간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읽은 책에서 내가 와 닿았던 부분만 반복해서 보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양이 점점 늘어나면서 인쇄물 읽기를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좋아하는 활동이라서 지금은 비주얼 씽킹으로 요약하곤 한다.

셋째, 책을 읽을 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말한다. 이야기하면 확실히 다른 부분보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함께 서로 읽은 책을 교류하면 기분까지 좋다. 

넷째, 독서 모임을 활용한다. 지정된 책을 읽는 모임도 참여했었고 자기가 읽은 책을 기록하고 소개하는 모임도 참여 중이다. 모두 좋은 시간이었고 깊이 있게 책을 읽어서 좋았지만 내 책 읽는 스타일과는 맞지 않은 아쉬움이 남았다. 







잔뜩 들고 있던 책을 떨구자 목적이 떠올랐다.


내가 했던 방법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발전시켜 활용하는 방법이고 나에게 맞았던 책 읽기 습관일 뿐이다. 나는 책을 왜 읽을까? 근본적인 질문을 내게 던져보니 나는 나를 바꾸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아무리 가벼운 책이라도 그 내용과 나를 연결 짓거나 책의 내용을 재해석했다. 그러면서 나는 성장했다. 지금도 책은 나를 키우는 두 번째 엄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핵심 목표라면 기억은 부차적인 행위이다. 기억은 못해도 변한 나는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부담이 조금 줄었다. 그래도 일말의 욕심이 일렁인다.     







사실 정답은 알고 있다.


반복과 내 말로 재해석하기가 필요하다. 마치 공부랑 똑같다.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을 뿐이다. 내가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서평을 쓰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자꾸 하라고 하니까 청개구리처럼 하기 싫어진다. 지금 도전하는 방법마저 실패하면 그때 서평을 해볼 생각이다. 요즘 하는 방법은 ‘한 권 읽기’다. 같은 책을 세 번 읽는 방법이다. 매년 100권 넘게 읽으려는 욕심은 올해부터 내려놓았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소화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다만, 정말 좋은 책이라고 내 마음이 받아들인 책에 한정한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게 평소 읽는 책과 깊이 읽는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깊이 있게 읽는 책이 1년에 5권 아니 1권만 되어도 성공적인 독서라고 믿는다. 깊이 읽고, 쓰면서 읽고, 질문을 던지면서 읽고, 그 의미에 어울리는 내 생각까지 기록하며 읽으니 서평과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길은 어디로든 통하니까 일단 걷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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