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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Aug 25. 2021

실패 좋아하세요?

1%의 변화





가벼워지고 싶으면 산책을 떠난다.


명상하는 것처럼 덕지덕지 붙은 생각이 떨어져 나간다. 마치 무거운 생각은 수성水性이라 산책이 주는 촉촉함에 녹는지도 모른다. 때를 벗기듯 상쾌하고 시원한 아침 산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한 달 넘게 산책을 제대로 못 하는 일이 생겼다. 바로 다리를 다친 것이다. 심하게 다치지 않았지만, 다친 부위를 안 쓸 수가 없어서 낫는 게 더뎠다. 최대한 움직임을 줄였던 3주 동안은 끔찍했다. 근질거리는 몸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의 체중은 기다렸다는 듯 늘었다. 생각이 무거워지자 살도 찌기 시작했다. -나의 뱃살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삐죽인다.- 덩달아 답답하고 우울한 생각만 계속 떠올랐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과자 집 마녀에게 잡힌 헨젤이 된 기분이다.      







실패는 나를 바꾼다. 


실패가 주는 약은 누구나 먹는다. 재미있는 건 그 약은 독약이 되기도 하고 명약이 되기도 한다. 실패가 주는 약은 성분이 같은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바로 내가 가진 생각의 알레르기 탓이다. “한 달간 움직임을 삼가고 걷지 마세요.”라는 의사의 처방에 누구는 “오래간만에 쉬고 좋네.”라고 좋게 해석하고 누구는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고 한숨을 쉰다. 같은 상황이지만 그 결과의 차이는 크다. 나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뇌로만 알았다는 게 다시금 증명됐다. 유명한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추구하던 이상향에 도달하는 데 실패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자신만의 독특함을 찾게 됩니다.      







나는 점점 변했다.


좋든 나쁘든 어쨌든 나는 바뀌었다. 크고 작은 도전과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는 걸 잠시 잊었다. 3주 뒤로는 통증이 조금 있었지만 나는 가볍게 집 앞 산책로 입구까지 갔다. 오랜만에 보는 나무가 반갑게 나뭇잎을 흔들어주었다. 결대로 부는 바람은 부드럽게 나를 스캔했다. “인증 완료!”라고 귓가에 외치는 것 같았다. 자연에게 내가 돌아왔노라고 알렸다. 그리고 긴 의자로 가서 20개쯤 겨우 하는 팔 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걷는 게 안 되니 다른 거라도 하고 싶어졌다. 최종 목표는 ‘바닥에서 하루 100개’지만 차근차근 내 수준에 맞게 했다. 긴 의자를 바닥 삼아 하는 운동은 쉬운 편이어서 질리지 않았다. 30개의 횟수는 점점 늘어 지금은 단번에 70개를 할 정도가 되었다. 어깨도 펴고 근육도 붙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다친 다리가 다른 나를 만든 것이다.







실패는 ‘나’라는 연을 날릴 때 쓴다.


실을 끊어버리면 나는 사라지고 실패만 남는다. 다시 나무에 걸린 나를 찾아서 실패에 연결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하지만 실패에 칭칭 감겨도 잘 난다면 언제든 과일을 따거나 새를 잡을 수 있다. 어쩌면 별을 딸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어려움이 다가오면 또 흔들릴지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선택한 도전과 실패는 감당하고 싶다. 아니, 즐기고 싶다. 다리를 다친 덕분에 가슴에 새길 새로운 글귀를 만들었다.


“도전은 나를 인도하고 실패는 나의 멱살을 잡고 인도할 것이다.”

거칠어도 좀 참아보려고 한다.   







다시 산책을 떠나고 있다.


통증이 없이 걷는 내 다리가 기특하다. 새벽 루틴을 마치고 얼른 내려와 승강기를 탔다. 문이 열리자 아기 자전거 안장에 길고양이가 앉아있는 게 보인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점점 다양하게 즐길 줄 아는 걸 보면 분명히 나는 달라지고 있다. 산책 중간에 긴 의자가 보인다. 








가는 길     



가는 길이 좁으면 마르고


가는 길이 넓으면 찐다     




가는 길이 끊기면 잇고 싶고


가는 길이 끝없으면 즐기고 싶다


  


가는 길은 내가 가야 길이고


멈추면 잠시 길이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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