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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Sep 03. 2021

나는 나만의 비밀 시간이 있다.

1%의 변화

나는 나만의 비밀 시간이 있다.

바로 새벽 시간이다. 나는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 알람 시간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요즘은 새벽 3시 40분에 알람을 맞추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는 적은 거의 없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3시에 깼다. 살며시 문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때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손잡이를 조심히 비틀면 나에게 새벽이 온다. 새벽마다 닭 모가지 대신 몇 개의 손잡이를 비트는 중이다. 비몽사몽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가볍게 양치질을 하면서 탱탱하게 부은 얼굴을 보았다. 잘 생겼다고 자기 암시를 해본다. 최면이 먹힌 적은 없다. 드라마에서 나올만한 분노의 세수를 하면 정신이 반쯤 돌아온다.  





   

나는 음양의 조화를 마신다.

주방에서 음양탕을 한 잔 마신다. 음양탕陰陽湯이란 뜨거운 물을 반 정도 넣고 나머지는 찬물을 넣어 미지근한 물을 만든다. 뜨거운 물이 상승하고 차가운 물이 하강하는 대류 현상이 일어날 때 마시는 물을 말한다. 이 물을 마시면 변비, 전립선 비대증, 부종, 복통, 두통, 어지럼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솔직히 과학적이지 않다. 그냥 물이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갈증 상태이니 찬물보다는 미지근한 물 한 잔은 권할만하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좋은 효과를 경험해서 아이에게도 한 잔씩 주고 있다.     






루틴이 나를 이끈다.

새벽의 일과는 루틴이 전부다. 나의 루틴은 ‘새벽 기상-음양탕 마시기-명상-필사-글쓰기-영어 배우기-산책’으로 구성된다. 물론 글쓰기에 빠져서 이후 활동을 못할 때도 있고 상태에 따라 실패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 루틴대로 새벽을 살아가고 있다. 생각 없이 다음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처음에는 습관을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은 습관이 나를 만들고 있다. 특히 좋아하는 활동은 명상, 글쓰기, 산책이다. 모두 나를 돌아보게 하는 활동이다. 아무래도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뭐, 귀찮지 않다.    




 

나는 왜 새벽에 일어날까?

5년 넘게 새벽과 같이 지냈다. 그때의 마음을 분석해보면 두 가지가 강한 동기로 작용했다. 하나의 동기는 책임감이다. 아빠가 되면서 달라지고 싶다는 충동을 크게 느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더 열심히 일했고 모범이 되기 위해 나를 바꿔나갔다. 변화의 시간을 위해 새벽을 선택했다. 나머지 하나의 동기는 자유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늘 “심심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와 밀린 집안일을 저울질하며 하루를 살뿐이다. 새로운 차원이라고 느낄 정도로 행복한 경험이지만 나를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하고 싶은 것은 강한 동기를 품는다. 그게 나를 새벽에 일어나게 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시간. 그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지우개로 지워져 흔적만 남은 나를 덧그린 기분이다. 무엇이든 해도 되는 샌드 박스sand box 같은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 





    

아내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잠이 많은 편이다. 

나와 생체리듬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자기도 새벽에 일어나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정말 반가웠다. 새벽 동지가 생긴 기분이었다. 한 달가량 5시 기상을 도왔고 순탄해 보였다. 그러다가 아내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늦춰졌다. 결국, 새벽 기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끝난 건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첫째, 새벽에 얽매이지 말자. 둘째, 고정된 시간을 확보하자. 그 뒤로 아내는 밤 8시만 되면 개인 시간을 가졌다. 산책도 하고 서재에서 나를 돌보기도 한다. 혼자 독서든 영화든 드라마든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일 것이다. 그리고 나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들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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