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엄마가 그리운 날이 있을까.
그럴 때면 난 ‘어머니의 유품’을 하나 꺼낸다. 샴푸다. 아버지가 쓸 일이 없다며 내게 준 유품 중 하나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고 산 샴푸에서 엄마의 향기가 났다. 머리카락 때문에 엄마가 고민하는 줄 몰랐다. 참으로 자식은 부모를 모른다. 가족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세상을 설쳤는지 모르겠다. 조심히 손을 모아서 아끼는 샴푸를 짜냈다. 거품이 터질 때마다 익숙한 향기가 퍼진다. 지그시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리며 엄마를 찾는 시간은 계속됐다. 선택된 물건에는 특별함이 있다. 눈이 따가운데도 바로 씻지 않고 샴푸통을 흔들었다. 예전보다 가벼워진 것 같아서 서운하다. 얼른 물을 뿌렸다. 무거운 감정이 물에 가라앉기를 바랄 뿐이다. 거품은 아쉬운지 나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배수구를 가득 메웠다.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감성이 가당키나 할까. 후다닥 미역 줄기처럼 축축한 머리를 붙잡고 화장대로 갔다. 드라이기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긴 앞머리가 눈을 때렸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는다.
엄마가 어릴 때 자주 해주던 드라이기 소리가 난다. 눈도 못 뜨고 뜨거운 바람과 부드러운 손에 머리를 맡기곤 했다. 도련님 스타일의 2 대 8 가르마로 말려주면 툴툴거렸다. 그러면 엄마는 “반 곱슬머리가 진짜 좋은 머리야. 어떤 스타일로도 잘 어울려.”라며 빙그레 웃었다.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엄마 앞에서 눈을 감는 상황이 세 번 있었다. 하나는 머리를 감겨줄 때, 다른 하나는 머리를 말려줄 때, 나머지 하나는 귀를 팔 때였다. 그중 엄마가 내 귀를 팔 때 가장 행복했다. 귀이개로 파면 귀가 아파서 눈을 힘껏 감았다가도 엄마의 무릎이 포근해서 인상이 스스륵 풀렸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무릎에서 잠이 들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 귀를 접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톡 두들겼다. 그러면 노크 소리가 재미있게 울렸다. 다 큰 지금 엄마를 떠올리며 눈 감는 상황이 세 번 생겼다. 하나는 엄마 샴푸로 머리를 감을 때, 다른 하나는 머리를 말릴 때, 나머지 하나는 눈을 오래 감을 때. 드라이기를 끄자 입가는 웃고 눈시울은 조금 붉어졌다. 1초가 아까운 아침부터 주책아 어디 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