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ilani Jan 02. 2019

빼빼로는 고양이

고양이와의 첫 동거

주인 없는 집에 처음 도착해 만난 생명체는 바로 빼빼로였다.

그 전 이 방을 썼던 클레어가 그리웠던지 등을 지고 앉아서 나를 본체만체했다. 하지만 우리의 내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길냥이들에게도 이유 없이 사랑을 받고 있는 나였기도 하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빼빼로가 바로... 개냥이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다 보니 개냥이도 이런 개냥이가 없다. 빼빼로의 주인 메릴은 어느 날 친구 집에 가 다른 고양이들을 보고 빼빼로가 독특한 아이인걸 그제야 알아채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빼빼로가 나에게 마음을 연 건 내가 방 문 앞에 앉아 그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린 지 채 3분이 지나지 않았다.




빼빼로는 고양이다.

폴과 메릴이 한국에 살았던 어느 날 동네에 버려져 있던 아이를 데려와 기르기 시작했고, 미국으로 돌아오며 함께 이곳에 살게 된 것이다. 그날은 빼빼로데이였기 때문에 이름이 빼빼로가 되었단다. 하지만 '쌍비읍' 발음이 힘든 폴과 메릴은 언제나 '페페'라고 불렀다. 빼빼로는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통해 제대로 된 본토 발음으로 이름을 불려봤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작은 로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고양이와 함께 살아보는 것이었다.

13년을 함께한 반려견과의 이별이 가족들에게 큰 상처로 자리 잡은 탓에, 그 후에,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우리 집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가족들은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처음엔 연체동물 같은 느낌에 까탈스러운 성격이 꼭 나 같아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나에게 안겨드는 새끼 고양이를 마주하고 부스러질 것 같은 그 생명체를 조심히 안아 올린 순간 오래된 선입견이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졌다. 

처음 이 집을 고르게 됐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빼빼로였다. 외국인 룸메이트와 한 집에 살아보고 싶었고, 고양이와 살아보고 싶었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 준 곳이 바로 이 집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미국에 오기 전 영어 선생님이었던 마크에게 했는데 마크가 내 환상에 물을 끼얹는 소리를 했다.

"룸메이트들을 분명 싫어하게 될 거야."

"고양이 밥 주라고 너를 들이는 거야."


풉.

정말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모두가 너 같지는 않을걸."라며 흥. 하고 돌아섰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집에서 내가 빼빼로의 밥을 제일 많이 챙겨준 사람이 되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휴.

항상 바쁜 폴과 메릴 대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나는 빼빼로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만큼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고 내가 하루 이틀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그 날들 동안 빼빼로가 나를 엄청 기다렸다며 믿지 못할 말을 룸메이트들이 해주었다.

하지만 빼빼로는,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며 내 공부를 항상 방해했고,



밥 좀 먹어볼까 하면 괴상한 자세로 테이블을 점령했으며,



인기척도 없이(?) 옷장 안에 들어가 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고,



양치 방해는 기본,


또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왔는데 인기척도 없이 찾을 수 없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캘리포니아에는 코요테가 사는데, 작은 강아지나 고양이들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문단속을 하며 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빼빼로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 날 나는, 혹여나 코요테한테 잡아먹힌 건 아닐까 혼자 상상 속에 빠져 걱정을 뒤집어쓰고 집을 뒤지고 다녔는데, 골 때리는 빼빼로가 그럴 리가 없었다. 훗날 폴은, 빼빼로는 지 몸 사리는데 도가 터서 문을 열어놓고 나가라고 부추겨도 절대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처럼 빼빼로를 찾아다니다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어느 날은 냉장고 위에서,



어느 날은 집구석 LP판 앞에서,



또 어느 날은 소파 뒤에서 코를 골며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고양이와의 동거는 너무나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우리 빼빼로는 전형적인 고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하지만 뭔가, 빼빼로도 한국 출신이라는 묘한 동질감에(?) 더 쉽게, 그리고 더 깊게 마음을 나눴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폴과 메릴이 안부를 전해왔다.


Pepe misses you.
이전 02화 Hello, Pepero!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