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꽃을 들었다.

목적과 흥미의 상관 관계

by 콩알이

회사의 뜬금없는 조직 개편으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린 2017년 2월 이후...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는 30대의 마지막 해와,

아홉수라는 흔한 말들이 겹쳐져 출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꽃집을 운영하시는 친척분께서 꽃을 배워서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는데 그때의 나에겐 황금 동아줄과 같은 이야기였다.

플라워 학원을 찾아 거금을 들여 등록을 하고 3개월간 토요일을 하루 종일 학원에서 보냈다. 국비지원 조건이 맞지 않아, 다른 수강생들과는 달리 전액 사비로 학원비를 결제하고 나니 수강 열의가 불끈 달아올랐다.


토요일은 학원, 일요일에는 가끔 친척분 가게에서 조금이나마 일을 도와드리며 뜨거웠던 여름을 분주하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가을 문턱에 서 있었고, 틈틈이 제출하던 이력서는 비명문대 학사, 서른아홉, 여자....라고 쓰지만 이 나라에서는 가임기 여성이라고 읽히는 듯한 나의 조건은 두꺼운 유리천장을 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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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간의 수업이 끝난 무렵, 친척분은 꽃집 아르바이트를 제안하셨다. 정말 꽃을 계속할 생각이 있으면,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가게에서 일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마침 그때는 일 년 중 가장 큰 업무인 사업계획이 시작되는 시즌이라, 업무를 완결시키지 못 한 체 퇴사하느니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시작해 보자는 방향으로 신랑과 의견을 모았다.


의외의 사람이 잡지 않고, 의외의 사람이 붙잡아 주었던 퇴사 면담이 끝나고....

이제 꽃 가게일에 투입될 수 있음을 친척분께 알렸을 때, 이미 가게는 다른 분께 넘어가 있었다. 퇴사 면담은 종료되어 퇴사만 남은 상태였고, 가게 일과 병행하고자 웨딩 플라워 수업까지 등록을 마친 상태였는데 매장을 다른분께 넘기셨다니?

청천벽력 같은 상황에 멘탈이 붕괴되었다고나 할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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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에서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그때의 상황에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상의 한마디 없었던 그 분과, 더불어 친지(라고쓰지만 시댁) 어르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한마디도 따져 묻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내 화를 다 풀어내지 못함으로 답답함의 깊이는 더 했었다.



1509111552308s.jpg 웨딩&파티 플라워반 수업 첫 작품


무산되어버린 일과 쉽지않은 취업에 꼬여버린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답답함이 쌓여 갔다. 낮시간에는 꽃가게 출근을 하고 평일 퇴근 후에 학원을 다니겠다는 나름의 계산으로 평일 밤 웨딩&파티 플라워반을 신청했었는데 학원 개강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친지분의 꽃가게 취업이 물거품이 되자 혼란에 빠졌다.

학원을 다녀야 하나?


나를 잘 아는 남편이 등을 떠밀었다. 학원을 취소시켜봐야, 집에 있는 시간만 길어질텐데 나가서 꽃이라도 만지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서 기분 풀고 오라며 내 망설임을 덮어주었다.


직장 생활하며 주말 마다 나갔던 수업은 그렇게도 흥미롭게 피곤함을 잊으며 들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수업으로 인한 목적이 사라지고 나니 흥미가 사라졌다. 목적이 없는, 목적을 상실한 일이 이리도 나른할 수 있구나를 몸소 체험하는 기간인 듯 했다.


2달여 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더욱더 이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음이 느껴졌다. 꽃을 업으로 삼고자 했던 것도 성사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퇴사를 돌이킬 수 도 없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회사를 벗어나고자 너무나 성급한 판단을 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자책이 매일매일의 24시간 동안 고스란히 나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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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꽃을 배우기 시작한 김에 화훼기능사 자격증까지 따 보겠노라고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반을 수강했다.

서양 꽃꽂이, 동양 꽃꽂이, 신부 부케가 기본이 된 수업 구성은 기능사 자격증에 취득에 대한 의문이 드는 수업이었다. 상품성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해 보고 싶은 수강생들의 욕심과는 달리, 수업은 어딘지 모르게 케케묵은 듯한 느낌이랄까?


화훼 트렌드도 돌고 돈다지만 꽃들을 댕강댕강 잘라 와이어링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오아시스에 꽃을 꽂아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플로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욕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자격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나 보다.

연습용 꽃을 사러 간 화훼 도매시장에서 마저도 "그거 뭐하러 따요?"하는 진심 섞인 농담을 할 정도였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꽃을 배우는 데 있어서도 어긋남이 없는 듯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프랑스며 독일이며 이미 해외파들이 즐비했고, 그들은 원데이 클래스 몇 번만으로도 유학비를 뽑고도 남는다 했다. 또 다른 부류로는 나처럼 국비지원으로 플라워 수업을 듣는 경우인데, 최저시급 또는 그 이하의 급여로 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중에는 기능사 시험 연습을 위한 연습용 꽃을 살 돈 마저 넉넉하지가 않아 시험에 낙마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 연습용 꽃을 하루가 멀다 하고 사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연습 부족, 테크닉 부족으로 보기 좋게 떨어지고야 말았다. 재응시에 대해선.... 모르겠다. 꽃을 만지는데 필요한 시험인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았으므로, 합격한 필기시험이 아깝긴 하다만 과감히 포기하는 쪽이 51%쯤이라도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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