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커피?

하룻강아지의 패기가 사라졌다.

by 콩알이

대학교 입학 때부터 이쁜 카페를 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작은언니가 이참에 본인과 카페를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퇴사한 나에게는 특별한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평소에도 커피를 좋아해서 주변에서도 차라리 카페를 차리라며 농담을 했던 터라 "그럴까?" 제안을 냅뜸 받아들였다.


아직 직장생활 중인 언니는 일 년 후에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계획을 이미 세워두고 있었기에 일 년간의 공백기가 주어진 셈이었다. 개인 카페? 프랜차이즈? 플라워 카페? 브런치 카페?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우선 커피 먼저 배우자는 생각으로 학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뭐가 이리 많지? 국내 바리스타, 유럽 바리스타, 이탈리아 바리스타 등등.... 각 인증별로 장단점을 글로 배워 결정을 했다. 기왕 하는 거 유럽 바리스타 자격을 득하는 것으로.(돌이켜 생각하면 무슨 허세였나 싶다.)


KakaoTalk_20180123_163601317.jpg 오랜만에 찾은 서점에서 데리고온.....다 읽은 책은 언니 손에 가 있어서 찍히지 못했다.


발길 뜸했던 서점에도 들러 책을 사고,

바리스타 학원을 검색하고 상담을 받고, 지인들을 물색해 혹시나 너무 비싼 수강료는 아닌지 확인하고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를 찾아 브랜드별로 상담을 받아 보고...


책에서도, 박람회에서도 카페 창업이 갖고 있는 환상을 일깨워주는 뼈 있는 농담이 있다.

커피가 좋아서 창업하는 건 철없는 소리라는 것과 정말 커피가 좋으면 그냥 사서 마시라는 이야기다. 내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아 들을 때마다 뜨끔뜨끔했다고 조심스레 고백하고 싶다.


유럽 바리스타 과정을 등록하고, 레벨 1을 마쳤다.

정해진 시간내에 정해진 사항들을 준수하여 에스프레소 2잔과 카푸치노 2잔을 제출하여 간단한 최종 테스트도 통과했다.

'고작 여덟 번의 수업으로 그 돈을 받아?' 하는 본전 생각과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결정을 한다면 굳이 내가 왜 이 돈을 쏟아붓지?' 하는 현실적인 계산들이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프랜차이즈 카페로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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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바리스타 레벨 1 과정이 끝나고, 연이어 레벨 2 과정을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뭐 그리 급하냐며 나에게 여유를 권했지만 집에서의 시간을 여유로 느낄 자신이 없었다.


무직자가 되어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는 지금의 시간은 때론 생각보다 괜찮고, 또 때론 생각보다 괜찮지 않다.
규칙적인 직장인 모드에서 벗어난, 지금의 무직자 시간에는 적응이 되어갔지만, 어쩌면 적응했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기 위해 틈을 주지 않으려 배움을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쉬지 않고 이어갔다. 분주함 속에서 오는 공허감을 때로 인지하며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레벨1 동기 4명이 나란히 같이 레벨2로 넘어왔다.

로스팅까지 배워서 카페를 오픈하겠다는 친구와, 3년간의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그만두고 온 친구, 그리고 생업을 위해 배우러 왔다는 연세가 조금 있어 보이는 분, 그리고 나.

각기 다른 색깔들로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원두를 배우고, 커핑은 무엇인지를 배우고, 라테아트를 해보며 조금 더 깊은 커피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KakaoTalk_20180205_152039786.jpg 에스프레소 추출 순서별 맛보기.


모든 것이 그렇듯, 알면 알수록 개인 카페 창업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카페 위치 물색은 물론이고, 인테리어를 직접 구상하고 원두 산지를 결정하여 공급처를 물색하고

카페 네이밍과 그에 적합한 컨셉과 식기들을 결정하고, 메뉴를 개발하고 나만의 레시피를 위해 고민을 해야 하며..... 등등의 모든 것들에 커피를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긴 게 아니라 겁이 나기 시작했다.


KakaoTalk_20180205_152039432.jpg 라떼아트 연습. 아트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였구나......


유럽 바리스타를 배우면서 커피머신을 다루는 실무에서부터 '카페일이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겠구나,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고, 트렌드를 반영한 신메뉴? 상상하지 못할 진상고객?강사들이 전해 주는 현장에서의 여러 고충들을 듣다 보면 자신감은 더욱더 뒤로 물러났다. 위치만 결정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오픈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던 하룻강아지의 패기는 어느덧 사라지고, '이래서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택하게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몸으로 부딪혀 보고서야 얻는 미련함은 너무나 나 다웠으며, 그나마 창업전에 깨닫게 된 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먹고살아야 할까?'

마흔 된 백수의 고민은 끝이 없고 답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라는 어느 책 제목이 가슴에 쿡! 박힌다.)



지난 한 해 많은 일들의 꼬임으로 어떤 것에도 확신이 서지 않고, 어떤 것에도 조심스럽다. 이번마저 일이 꼬이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만 같다. 무언가를 하느라 일상이 분주하지만, 이 분주함에 알맹이가 있을지 모르겠고 가게 오픈이라는 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항상 곁에 있다.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포기하지 않기를, 불안함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자극제가 될 수 있길 바라며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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