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또 취업을 택했다.

Chapter 31.

by 콩알이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다툴일은 단 하나였다.

밥 못 먹는 아픈 아이이니 조심스러워하는 부모님과, 그 다름이 싫었던 나의 의견차였다.


초등학교 때에는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 끼니를 못 챙기니 가지 말라 하셨지만, 친구들과 달리 혼자 남겨지는 게 싫다며 고집을 부려 쫄쫄 굶어가며 수학여행을 갔었더랬다. 담임선생님이 당신께서 직접 챙기시겠노라고 부모님을 안심시켜주셨고, 선생님은 내 먹거리를 직접 챙기시며 때로는 업고 다니기까지 하시며 내 생애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남겨주셨다.


고등학교 진학이 또 문제였었다. 집 가까운 학교에 가기를 원하셨던 부모님과, 타 시에 있는 학교를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겠다는 내가 부딪혔다. 물론,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진실임을 또 한 번 증명했다. 돌이켜보면 차라리 부모님 말씀데로 집 근처 학교를 다니며 집밥을 먹고 지냈다면 내 고등학교 성적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르신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도 틀림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 후, 부모님은 공무원 준비를 원하셨다. 부모님의 이유는 명백했다. 작은 키와, 목에 드러난 수술 흉터 등으로 구직에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듣는 둥 마는 둥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했었지만, 수술 후 또다시 공무원 준비가 화두에 올랐다. 대수술을 했으니 1년 정도 쉬다가 기운을 회복하면 취업보다는 공무원 준비를 하길 원하셨다. 3개월쯤 쉬었을까? 슬슬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변치 않는 속도로 흐르는데
내 걸음만 느려져서는 뒤처진 기분..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 일이 무엇이든
무기력한 내 일상에, 조그마한 활력을 줄 수 있다면 말이다.
2006.10.31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술 전 아주 잠시 발 담갔던 노량진의 분위기는 나에게는 적응 불가였다. '도대체 공무원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하는 의문을 남기며 그만두었지만 그 시간을 잘 버텼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두 번 다시 공무원 공부는 싫다는 나와 부모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 질러가며 싸워보기도 했다.


그때도 역시나, 부모님의 뜻은 만류하고 난 취업을 했다. 수술 후 5개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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