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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알이 Apr 23. 2019

기적 같은 일이라는....
내 시간. 내 삶.

일 년 전쯤인가.... 18시간 금식을 하고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그 정도의 금식으로도 뱃속에 음식 잔류물이 많아서는 검사가 중단됐었다.

수술 후 건강해졌다는 자만 아닌 자만으로 나름 지냈는데, 또다시 내가 정상인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혼자 괜히 마음이 상해서는 일 년 가까이 검사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 예약을 잡으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은 퇴직, 소화기 내과 담당의는 이직. 그렇다고 내 차트가 있는 그 병원을 두고 다른 곳을 가자니 내 병력을 다시 줄줄줄 읊조리며 나를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아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 예약을 했다.

짧은 요약으로 내 병력을 들은 선생님의 간결한 한마디. 

냉정하게 들리시겠지만, 이렇게까지 사시는 게 기적 같은 일이네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수술 후에 설사가 잦을 거라 하셨었는데, 그런 증상 없이 잘 살았거든요. 최근 들어 설사가 잦아요."

"당연한 증상이에요. 젊으셨을 때는 젊음으로 드러나지 않았겠지만 이제 그때가 지난 거죠.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가끔.... 음식을 먹을 때 삼킨 음식이 위로 내려가지 못하고 가슴 쪽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들어요. 압력이 맞지 않아서 내려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물도 안 내려가고, 그 증상이 며칠을 갈 때도 있어요."

"그 증상은 환자분이 하신 수술을 하면 당연히 있는 증상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수술로 인해 감당해야 할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가슴에 못 박히며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갑갑함이 밀려왔다. 정상인인 척, 그렇게 일상을 지내다가 병원에서 이런 현타를 받고 오는 날이면 덮어두었던 내 삶에 대한 무게와 그 답답함이 며칠을 억누른다. 혹여나 짐이 될까, 가족에게도 토로하지 못하는 이 무게는 오롯이 혼자 견뎌내고 감당해야 될 짐인 듯하다.


내가 바라는 건 기적이 아닌.... 기적이 필요 없는 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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