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명품인가!>
오래전 서울에서 집안 결혼식이 있어 어느 호텔에 갔었다. 호텔 로비에는 여고 동창생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12명이 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모피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들은 키가 크거나 작거나, 살집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롱 모피를 몸에 두르고 호텔 로비를 장악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모피가 아닌 연그레이 니트 한 벌을 입고 단아한 모습으로 그들 숲에 앉아 있었다. 우아한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어렴풋 아련하다.
그 후 나는 니트에 눈을 뜨게 되었고, 오랫동안 니트를 유용하게 입고 다녔다. 그렇게 명품이란 나에게 어울리고, 또 나를 돋보이게 하고, 나를 비출 수 있는 모든 것이 나에게 명품이란 것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결혼식장 풍경에서 중년 여성들의 옷차림과 태도가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는 것을 보면, 개인의 이미지에 대한 관심과 존재 가치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이제 내 나이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다. 중년 여성, 이제는 나도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비슷비슷한 그녀들의 나이가 되었다. 아들이 결혼한다고 며느리감 데려오는 날이 되면, 나도 그 결혼식장의 혼주처럼 분주할 그런 나이에 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또 귀한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무 화려해서 나와 겉도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어울리며 나란히 설 수 있는 사람, 때로는 한 발짝 물러나 수용하고 또 포용하며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서로에게 귀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삶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어울리는 사람, 그래서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 서로에게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귀한 사람과 좋은 사람은 함께 잘 어울리는 사람, 나와 다르다고 해도 그 다른 점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또 내가 귀하게 여기게 되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 귀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모두 타인의 몫이라기보다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달려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의 어떤 점을 장점으로 보는지, 내가 누구를 귀하게 여기는지, 내가 누구를 믿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