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르메 Jan 26. 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화책의 세계

끝나지 않은 반전


”학교 들어가기 전에 만화책 보여주면 큰일 나 “

“이런…”



 

찬이는 초등학교 입학 하기 전에 만화책의 세계에                  입문했다. 누나를 본받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나의 계획이 삐끗한 느낌이었다. 그저 느낌이겠지 하고 지나갔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 만화책 보여주면 안 된다는 말을 몇 년 후에 들었다. 이제 와서 어떡하나. 만화의 세계에서 수영하고 있는 애들 어떻게 줄글의 세계로 입문하게 만드나.


‘아~육아는 난제들의 연속이다.’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돌아서면 또 다른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만화책과의 결별 선언은 꽤나 오래 걸렸다.

‘만화책 보는 게 어디야. 설마 만화만 보겠어?‘

그러다 말겠지를 몇 년 하고 나니 눈뜨면 만화책부터 찾는 아이가 되었다. 집 책장엔 한자도둑과 수학도둑도 있었지만, 특히나 메이플스토리 코믹만 주야장천 보고 있었다. 현재는 만화책이 100권이 넘지만 그 당시 50권 정도였던 만화책 중에 달랑 7권이었던 건데. 꺼내기 어렵게 구석에 숨겨놔도 높은 곳에 올려놔도 기똥차게 꺼내는 찬이.


’이런 걸 과제 집착력이라고 하는 걸 꺼야. 괘. 괘. 괜찮아.‘


찬이 머릿속 알고리즘은 만화책이었다. 몇 년간의 만화책 짝사랑은 식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결정한 최후의 수단! 만화책을 보따리 싸듯 꽁꽁 싸매고 창고 제일 위 선반에 고이 모셔드렸다는 거다. 필요한 권수가 있으면 미리 예약하고 꺼내 볼 수 있었다. 도서관 보존자료 꺼내는 것보다 어려웠다. 동화책 대신 한자 도둑만 보는 찬이 때문에 한자도둑을 몽땅 팔아버린 실수를 겪은 후 나름 보완된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익한 짓이었지만.


이제야 만화책과의 기약 없는 이별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말풍선만 가득한 책들과 작별 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엄마가 만화의 늪에서 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화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찬이가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고 화도 났다. 지극히 모범 답안 같은 누나가 이끌고 있는 독서 클럽을 찬이 혼자서 자꾸 방향을 트는 느낌이었다. 훌륭하게 독서클럽을 운영하는 별이의 추진력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비포장도로 말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었다. 별이가 잘 닦아놓고 관리도 잘 되어있는 고속도로는 누구라도 달리고 싶은 길이었다.


‘찬이야, 제발’

만화책 그만 읽어!라고 말하면서 카카오프렌즈는 계속 들이고 있었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아울북 본사에 놀러 가기도 했다. 이건 무슨 모순인가 싶으면서도 아이가 해맑게 좋아하는 모습 앞에선 단호해지기가 어려웠다. 꼭 사야 한다고 버티는 아이를 당해낼 수도 없었다. 삶이란 언제나 반전의 반전이다.


일부 만화 허용 단계에 오기까지 제일 큰 역할을 했던 건 찬이의 아웃풋 양이었다. 만화책을 흡수하는 속도가 별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빨랐다. 책을 읽은 후 끊임없이 아웃풋을 보내는 아이 앞에서 만화가 나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간결하고 익살스러운 그 이야기 속에 흠뻑 젖어 지낸 아이는 사물이나 현상의 특징에 대해서도 잘 이해했다. 아무렇게나 그려서 아무 말이나 대충 쓴 이야기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했다. 아이들은 그냥 믿고 두면 되는 거라는 말이 떠올랐다.


원하는 책은 다 살 수 있다. 만화책은 제외지만 획득하는 방법이 있다. 줄글책+만화책을 묶어서 구입하는 방법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생긴 우리 집만의 만화책 구입 루틴이 생겼다.


그럼에도 앞으로 구입하는 만화책은 더 깐깐하게 제외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일이 하나 생겼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연재물인 그리스로마신화 2권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간 책의 내용은 엄마 검열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든 루틴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내용 검열까지는 불필요하다 판단 내렸다. 만화책을 통해 전 세계 정보를 얻고 배워가던 아이들이었기에 출판사와 저자를 믿고 읽혔다. 그러다 그리스로마신화 신간을 보고 놀라게 된 것이다. 60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알게 되는 것이 한두 가지의 정보나 지식(양보하고 양보해서 4가지)이라는 것에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또 반전이다.


별이는 강력하게 변론했다.

“1.2권은 그리스로마신화 인물을 소개하는 과정이라 그런 거야”


별이의 말에 반쯤 설득을 당하긴 했지만 발 빠르게 만화 신간을 들이고 있는 학부모로서는 사안이 심각했다. 엄마가 해야 할 일에 ‘책 내용확인하기’ 한 가지를 추가하기로 했다.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아이들처럼 나에게도 과제 하나가 늘었다.


이 다음에 만나게 될 반전은 무엇이냐.






작가의 이전글 책의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