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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Aug 29. 2023

내가 절에 가는 이유

독실한 신자는 아닙니다

오늘은 음력 7월 14일이다.  절에서 큰 불공이 있었다. 음력 7월 15일에 불공이 있다. 내가 다니는 극락사는 그 전날인 7월 14일 각 절에 있는 스님 6분을 모시고 조상영도천도를 봉행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엄마의 위패를 극락사에 모셨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제일 좋아했던 절이었다.  


어젯밤에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엄마가 아침 일찍 절에 가야 하니 내일은 미안하지만 콘후레이크를 먹고 가달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침은 무조건 밥을 외치는 큰 딸의 허락이 떨어졌다. 


아이들의 옷을 챙겨주고, 인사를 하고 7시 40분에 출발했다. 절에 8시 25분에 도착했다. 불공은 9시에 시작한다.시어머니는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 버스를 타고 절에 갔다.


극락사


시어머니는 글을 못 읽는다. 38년생이다. 배우려면 충분히 배울 수 있었지만 시기를 놓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글을 배우자고 몇 번을 말했다. 어머니는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싫다고 하셨다. 글을 모르면서 그 많은 사업을 일으켰다. 우리가 이만큼 먹고살 수 있었던 건 악착같이 일을 한 어머니 덕분이었다. 글을 모르는 대신 기억력이 비상했다. 계산이 빠르고, 상황파악을 잘했다. 아들 셋 중에 어머니를 따라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극락사 조상영가천도

글을 못 읽는 어머니는 불공하는 내내 눈을 감고 혼잣말을 한다. 옆에 앉은 사람들이 스님과 입을 맞춰 천수경을 읽고 건단 진언을 외칠 때도 어머니는 끄떡없다. 사람들이 법요집에 나와 있는 글들 따라 읽는 동안 어머니는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신다.



나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아니다. 글을 읽을 줄 알면서도 천수경은커녕 반야심경도 외우지 못한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조차 눈을 감고 외우는 불경도 못 외운다. 그저 절에서 불공이 있다고 보내는 문자를 보고 시간이 되면 참석한다. 


절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며 따라 한다. 그날 딱 점찍은 사람 한 명을 따라 한다.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마치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너무도 간절하게 절을 한다. 누가 보면 백 다섯 개의 사연은 간직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절을 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되뇐다. 무엇을 어떻게 빌어야 할지 모르지만 이상하게 부처님 앞에 앉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몸이 건강해서 절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가족이 무탈함에 감사하다. 이 순간 이 장소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절에는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 풀을 잔뜩 먹인 빳빳한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가 앞에 앉아 있다. 머리는 희고 뒷목에 주름이 자글 하다. 검버섯이 가득한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한다. 두 손을 멀리서 끌어와 한데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하얀 모시옷이 조용히 움직인다.


불공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가끔 졸기도 하고, 저 남자는 왜 스님이 되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합창단의 목소리가 오늘은 힘이 없네. 하다가 주지스님의 기다란 손가락을 보며 일을 안 한 손이구나 생각한다. 부처님이 알면 깜짝 놀랄  생각들이 들어왔다 나간다. 


그러다 앞에 있는 사람이 절을 하면 나도 절을 한다. 마치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처럼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정갈하게 절한다. 그렇게 절을 하다 보면 나도 뭔가 바라는 게 자꾸 생겨난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아이가 없을 때 절을 찾았다. 아무 절에나 들어갔다. 텅 빈 대웅전에 앉으면 나무바닥이 차고 딱딱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했다. 기도하다 울었다. 울다가 절을 했다. 고개를 조아리며 빌었다. 건강한 아이를 낳게 해 주세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랬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도 나는 절에 간다. 부지런히 간다고는 못 한다. 법회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시어머니와 같은 절을 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엄지 척을 올렸다. 나는 잘 모르겠다. 부처님 앞에 서는 건 나다. 시어머니와 함께 오고 갈 수는 있지만 대웅전에 앉는 순간은 오로지 나와 부처님과의 만남일 뿐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상을 치우지만 그건 집에서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위패가 있어서 가는 거고, 나는 우리 엄마의 위패가 있어서 가는 것이다. 장소가 같을 뿐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있다는 건 큰 부담이 아니다. 


극락사 절 밥 맛있다

할머니들과 밥을 같이 먹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한다.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 만든 밥상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깨끗하게 먹음으로써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의 굽은 허리와 하얗게 센 머리가 좋다. 믹스커피 한잔에 세상 다 얻은 듯이 행복해하는 미소가 좋다. 


절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 돌아가신 영가들을 모신 위패와 산 사람들을 위한 축원이 있다. 가족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만나고 오면 나도 살아갈 힘이 난다. 내가 절에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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