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Sep 05. 2023

틀려도 정말 괜찮은가?

엄마의 고민

초등학교 2학년인 막둥이는 말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다. 집에서는 언니, 오빠 뺨을 때릴 만큼 요망진 아이인데 이상하게 밖에만 나가면 말을 못 한다. 제삿날 말 한마디 않고 가만히 앉아 미역국 두 그릇을 먹었다. 앞집에 사는 할머니와도 아직 어색한 사이다. 1학년 때는 수업시간에 말 한마디도 안 했었다. 지금은 자기 차례가 오면 책도 읽고, 발표도 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며 끝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참관수업에 가 보면 속이 터진다. 


요즘 아이들은 말을 참 잘한다. 선생님보다 말이 더 많은 아이들도 있다. 대답도 잘하고, 엉뚱한 말도 잘한다. 그런 아이들 틈에서 막둥이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앉아 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도, 질문을 해도 묵묵부답이다. 나도 답답한데 선생님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며 막둥이의 성향을 얘기했다. 다행히도 선생님들은 그런 막둥이를 잘 알고 계셨다. 수업에 잘 따라오고, 뭐든 잘하는데 다만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주는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다. 다음 주에는 참관수업이다. 방과 후 참관수업도 있다. 막둥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오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은 다 가는데 엄마만 안 가도 괜찮겠어? 물었더니 그럼 엄마는 내가 발표를 안 해도 괜찮겠어? 묻는다.


지난주 반모임에 갔다가 참관수업얘기가 나왔다. 막둥이와 친한 남자아이가 있는데 엄마한테 막둥이걱정을 매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엄마의 아들 말로는 우리 집 막둥이는 친구들과는 말을 잘하는데 이상하게 수업시간에는 말을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가 너무 완벽하게 대답을 하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저 아빠 닮았나 보다 생각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웅변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랬었다.



그랬는데 자신이 없어졌다. 어렸을 때는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을 번쩍 들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됐다. 질문지를 받으면 정답을 써넣어야 된다는 생각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오죽하면 건강검진 설문지에서조차 나의 건강을 정답에 맞춰 체크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내 생각보다 정답이 중요해졌다. 



지난주에 독서모임이 있었다. 책을 읽고 미리 받은 질문지에 답하는데 어려웠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다를까 두려웠다. 편협한 사고가 들통날까 걱정이 됐다. 어떻게 써야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부수적인 것들을 생각하느라 시간만 잡아먹었다. 결국 나는 독서모임에서 한 번도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아빠에게 바둑을 배운 적이 있었다. 7살쯤 되었던 것 같다. 아빠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바둑왕이었다. 우리 집에는 높고 두꺼운 바둑판이 있었다. 아빠가 바둑돌을 놓으며 설명을 했다. 그다음 바둑돌을 다 치우고 시작했다. 바둑돌 하나를 놓을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아빠는 잘못 놓을 때마다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작은 바둑돌이 바위처럼 무거웠다. 바둑이 하나도 재미없었다. 



틀려도 괜찮아가 아니라 틀리면 죽어.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게 아닐까. 



가끔 나는 엄격한 선생님으로 변신하곤 한다. 편지를 받으면 제일 먼저 맞춤법을 살핀다.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체크하지만 가끔 문제집을 검사한다. 그럴 때마다 지적질이 들어간다. 그럴 때 내 얼굴은 어쩌면 그 옛날 바둑판 앞에 앉아 있던 우리 아빠와 같지 않을까?



막둥이는 신중한 아이다. 눈치가 빠르고 생각이 깊다. 그래서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가끔 막둥이가 아무 말 대잔치를 했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뱉어냈으면 좋겠다. 어른아이였던 그 옛날의 내 모습을 아이에게서 보고 싶지 않다. 



다음 주 참관수업에 막둥이가 한 마디라도 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부르면 네.라고 대답했으면 좋겠다. 

막둥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미역국을 미끼로 잘 꼬셔봐야겠다.     



사족:그렇게 말하는 걸 쑥스러워하면서도 반장선거에는 꼬박꼬박 나가는 울막둥이. 한 번도 반장이 된 적은 없지만 엄마는 믿는다. 막둥아.

계속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절에 가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