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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하나도 안 괜찮은 말 괜찮다.

by 레마누


여보세요. 누구? 수진이냐? 아고, 망할 년.

없을 때 전화할까 봐 오줌도 빨리 싸고 들어오는데 통 전화 한번 안 하고

그래, 별일은 없고? 아이들은 잘 크고?

아프진 않고?

오냐. 나는 염치없게 밥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무심한 년. 너네 엄마 있을 땐 그래도 며칠에 한 번은 사람소리 들었는데

너네 엄마가 말은 작작해도 김치도 주고, 과자도 사다 주고, 이불도 빨아줬는데.

에구구. 아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아흔 넘은 산귀신이 자식 둘 잡아먹고 눈 떠 있는 것도 부끄럽다.

시어머니한테 잘해라. 같은 말이라도 곱게 하고, 네. 네. 대답하고.

어멍아방이 편안해야 너네도 편안한다.

점점.......

안 보인다. 눈앞이 거무스레한 게.

확 죽어지민 조켜마는. 아고아고.

넌 목소리도 어멍 꼭 닮다.

망할 년. 너네 어멍만 생각하면. 아니다

그냥 넌 잘 살아라. 새어머니한테도 어머니.

어머니하멍 자주 찾아가고

패들락 패들락 하지 말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 사람 없었으면

너네 아방 그 성질에 너네가 고생한다.

잘 허라. 잘해.

떵 허느니.

너네 어멍이 그거밖에 아닌 걸.

동생들 잘 살펴보멍 의지해서 살아라.

오냐. 오냐. 알았다.

안 와도 좋으니까 전화나 해라.

그래. 알았다. 끊어라.



엄마가 생각날 때면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96세 외할머니가 여보세요. 하면 할머니. 라고 한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눈물이 먼저 나온다.

시어머니 말 잘 들어라. 아프지 말아라. 남편한테 잘해라. 아빠 자주 돌아봐라. 새어머니한테 잘해라. 아프지 말아라. 할머니는 몇 번이나 했던 말을 반복하고 나는 그저 네네. 대답한다. 한참 울다 웃으며 말을 하던 할머니가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너무 오랫동안 잡아놨다며 종종 전화나 하라고 하며 끊는다. 그렇게 전화가 끊기면 한참 동안 멍하니 있게 된다.


그리운 게 엄마인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외할머니인지, 듣고픈 게 엄마 목소리인지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의 소리인지. 할머니는 내 목소리가 꼭 엄마를 닮았다며 울고 나는 할머니와 통화하면 엄마얘기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아서 운다.


외할머니가 시설에 들어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눈이 잘 안 보이신다고 하시더니 결국 그렇게 됐나 부다.

시설에는 죽어도 들어가기 싫다고 하셨는데. 마음 한구석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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