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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세요?

by 레마누

초등학교6학년 때 아빠는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수박농사를 지었다. 작은 산등성이에 있는 밭이었는데 주변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낮에도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트럭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수박밭에는 작은 나무정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누워 수박을 먹으며 밭을 지켰다. 수박값이 좋았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매일 밭을 지켰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아빠는 집에 있던 나와 3학년 동생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작은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7살 막내가 있었다. 집에 있으면 엄마는 나만 일을 시킬 게 뻔했다. 얼른 따라나섰다.



여름 날씨는 변덕스럽다. 아빠는 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내려주고는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는 말만 하고 트럭을 돌렸다. 낚시하러 가는 거였다. 아빠는 틈만 나면 낚시를 하러 갔는데 엄마는 아빠가 낚시 가는 걸 싫어했다. 한번 나가면 들어올 줄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온갖 소리가 들리는 깊은 산속에서 우리가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은 친절하지 않고 몹시 편파적이다. 시계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책도 없이 한없이 늘어지는 여름날을 즐기고 있었다.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새소리를 들으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낄낄대고 있었던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시커멓게 변했다.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왔다 갔다. 팔뚝에 자잘한 소름이 일었다. 하늘이 갈라질 듯 번쩍하고 번개가 때리더니 곧이어 주변을 흔드는 천둥소리.



바로 전까지 쨍쨍하던 해는 어느새 검은 구름 사이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지는 비.

천둥과 번개와 비.



두려웠다. 너무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나무정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흐른 지도 모른 채 하늘이 난리를 피우는 걸 고스란히 보고 있었다,



-가자.

-안돼. 아빠가 기다리라고 했단 말이야

-여기 있다가는 죽을 거 같아. 걸어서 집에 가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른다. 그냥 여기가 아니면 될 것 같았다. 공포는 터무니없는 상상력으로 제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온갖 상상을 다하다 보니 머릿속이 꽉 차서 견딜 수가 없었다

- 걸어가면 돼. 내가 길을 알고 있으니까. 가자.


안 가겠다고 버티는 동생을 억지로 끌고 정자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비는 앞이 보이지 않게 쏟아지고 있었다. 비를 맞는데 손바닥으로 매를 맞는 것처럼 따갑게 아팠다. 다행히 천둥, 번개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다,



동생과 손을 꼭 잡고 걷기 시작했다. 차로 20분 걸리는 거리면 어린아이들 걸음으로 두 시간정도였을까?

아니면 세 시간?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 가슴은 쉴 새도 없이 쿵쾅거렸다.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한걸음도 쉬지 않고 걸었다.



걷다 보니 산을 내려왔고 걷다 보니 길이 보였다, 사람들은 비를 쫄딱 맞으며 걷는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집에 들어와 쉬었다 가라고도 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묵묵히 걸었다.



언제부턴가 세찼던 비가 조금은 잦아들고 거리는 어느새 말갛게 변하고 있었다. 익숙한 길에 들어서자 비 맞은 생쥐꼴이 우스워 서로를 놀려댔다.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무서워서 불렀는지 신나서 불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둘이 서로 목청껏 불렀던 기억이 난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풀리면서 우리가 해냈다는 자신감과 집이 가까워진다는 안도감.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내려갔다. 집에서는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던 동생이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동네 사거리에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날씨가 나빠져서 낚시를 접고 우리에게 가려고 했다며 왜 기다리지 않았냐고 했다. 우리는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 평생 아빠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했던 엄마가 아이들만 놔두고 낚시를 가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아빠한테 큰소리를 내는 걸 처음 봤다. 엄마가 우리를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있었나 싶어 마음이 든든했다. 동생과 나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요를 깔고 나란히 누웠다. 몸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는데 뭔지 모르게 따뜻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가끔 동생과 그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쏟아지는 비. 무섭게 내리치는 번개와 세상을 흔드는 천둥소리. 작고 하얀 길을 걷는 어린 여자 아이 둘. 손을 꼭 잡고 서로에게 의지한 채 계속 걸었던 기억. 온몸은 홀딱 젖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고 낄낄댔던 그때. 그 시절 여름의 기억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그날의 기억으로 인해 나는 조금 터프해졌다.


저 너머에 근사한 뭔가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볼래요 -빨간 머리 앤-


어딘가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봐야 아는 것들. 경험으로 느끼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정말 하기 싫은 말인데 꼭 써야 할 때가 있다.

나도 예전에는 눈 반짝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었는데.

나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딱히 뭘 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입버름처럼 자기 위안으로 삼는 말.

나도 예전에는.


지나간 일들을 자꾸 떠올리는 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있는 자리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옛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그때의 기억이 강한 건 그 순간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기억할 거리가 많다는 건 나도 제법 괜찮게 살아왔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들을 쓰면서 현재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엄마를 기억하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이미 없는 사람의 일들을 시시콜콜 떠올려봤자 돌아올 것도 아닌데 미련한 행동일 수도 있다. 엄마를 기억하다 보면 그 시절의 내가 같이 따라온다. 그때는 몰랐던 일들이 지금은 이해가 될 때도 있다. 몰라서 복잡했던 매듭을 천천히 글을 쓰며 풀어가고 있는 중이다. 마음속에 있는 단단한 매듭을 풀지 않으면 내가 살지 못할 것 같아서 엄마에 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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