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심
유골을 받으러
식구들은 수골실로 모였다
철심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분쇄사가 물었다
오빠 어릴 때 경운기에서 떨어져
다리 수술했잖아, 엄마
엄마 또 운다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분쇄 사는 천천히
철심을 골라냈다
나 있잖아. 결혼하고 일 년 됐을 때 울시어머니 암수술받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면서 제사 가져가야 한다는 성화에 멋도 모르고 제사한다고 했잖아.
근데 시어머니는 19년째 정정하시고, 나만 늙었네
우리 큰 형님은 나 결혼하자마자 하는 소리가 자리 잡힐 때까지만 네가 제사하면 금방 자리 잡고 제사 가져간다고 했는데, 17년째 내가 하고 있잖아.
가끔 동생과 나는 누가 더 힘든지 배틀이 붙는다. 이긴다고 상 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이상하게 내가 덜 힘들면 손해인 거 같아 기를 쓰고 이야깃거리를 짜낸다.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이 한방으로 날 KO 시킨다.
수요일은 남편의 할머니제사다. 추석 때도 음식을 한가득 했다. 86세의 시어머니는 예전에 못 먹었던 때만 기억하고 살고 있다. 음식은 무조건 많이 풍성하게 만드신다.
할머니제사는 20년째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1남 6녀였다. 얼굴이 똑 닮은 6명의 시고모님들이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을 데리고 제사 때마다 오셨다. 그들이 먹을 저녁과 돌아갈 때 손에 들려 보낼 음식을 만들었다. 형님과 나는 하루종일 허리를 펴지 못했다.
정정하던 6분의 시고모님들 중에 3분이 돌아가셨다. 한 분은 요양원에 누워 계시고, 한분은 치매다. 막내고모님은 허리를 허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2년이 지났다. 고모님들이 안 오셔도 사촌형님네는 왔는데 코로나 이후 왕래가 뜸해졌다.
제주에서는 "제사 먹으러 간다"라고 한다. 수요일 할머니의 제사를 먹으러 온 사람은 2번째 고모님의 아들내외뿐이었다. 10인용 밥통 두 개에 밥을 가득하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많이 올 때는 몸은 힘들어도 집안이 시끌벅적해서 좋았다. 우리 식구 10명과 사촌형님네 부부만 조용하게 제사를 지냈다.
-내년부터는 호꼼만 허라. 아무도 안 올 거 닮다.
식탁에 가득한 음식들을 보며 시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상황을 확실하게 알면 힘들기는 해도 당황스럽지는 않다. 이렇게 된 이상 내년부터는 우리끼리만 제사를 치르겠습니다. 선포를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이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이틀 동안 집을 치우며 구시렁대고 있다. 빨래방망이가 있으면 좋겠다. 애꿎은 걸레라도 팡팡 후려치고 나면 속이 조금 풀리려나.
그 와중에 포스팅할 거리를 찾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일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든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제사 음식을 만드는 나, 준비한 음식이 부족하다며 계속 더 사 오는 나, 손님들이 오지 않아서 힘 빠진 나,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나 몰라라 하는 남편까지. 거리를 두고 보는 사람들은 연극의 한 편처럼 치고 빠진다. 오늘은 지금 내 마음에 어울리는 시를 찾는 나를 보고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면 사람이 가는 것도 다 똑같아야 하는데, 슬픔이 내게 올 때쯤이면 언제나 두 배로 불어나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시를 읽으면 뭉클 올라오는 뭔가가 있다. 나는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시를 읽으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짚어본다. 그리고 쓸거리가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