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 신달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by 레마누

열 애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 속으로 흘러내렸다

잘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 버려

고질병 류머티즘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뒤치락 뒹굴겠다

연인 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 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상처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린 시인의 독백을 읽다 보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사랑은 더 이상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 사랑은 상처를 낳았다.



아픈 상처는 열애의 조건이다. 흔적은 열애의 결과다열애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상처가 필요하다.



일부러 일회용 밴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는 건 열애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손을 베였지만 이미 상처를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린 내 몸에는 흉터가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했을까?






"고통과 상처와의 연애가 내 삶의 긴장을 돋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게 사랑이라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전 잠수형이에요. 요령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계산은 아예 할 줄 모르고 바닥까지 푹 빠져 버리는 수렁이 제 사랑법입니다. 허망의 극치를 달리는. 제 경험으로는 나같이 푹 빠져 주는 사랑은 잘 없었어요. 있었다면 제 남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생을 모조리 탕진하는 비렁뱅이로 고통의 수심 깊이에서 살아왔어요." - 시인의 말 중-



정작 생을 탕진할 만큼 비렁뱅이로 살게 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시인이 담담히 써 내려간 열애라는 시를 읽으며 흉터까지도 사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시련은 찾아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이는 손잡아 줄 사람이 올 때까지 울기만 한다. 해가 뜨고 별이 져도 그리운 사람을 기다린다. 툭툭 털고 일어나거나 넋 놓고 기다리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신달자의 "열애"를 읽으며 달콤한 사랑의 시련을 버렸다. 나는 신파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삶의 가혹함이 만들어낸 상처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아픔을 즐기겠다는 시인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혼자 아프면 외롭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제법 참을 만도 하다.



"너로 인해 내가 살아간다. 그러니 고맙다. 내 안의 상처들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야-백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