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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Nov 19. 2023

라면 좋아하세요?

라면의 유혹

평일 오후 2시에 라면을 먹는데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왜 라면을 먹어?"


전화를 걸어온 친구가 물었다.


뭐 하냐고 물어보길래 라면을 먹는다고 했는데,  갑자기 목에 뭔가가 콱 걸리는 것 같았다.


"어우, 난 이제 라면 못 먹겠더라.  맛도 없고.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그래?  그런데 왜 전화했니?"




친구의 전화가 다 반가울 수는 없다. 청소하고 글 쓴다며 점심때를 놓쳤는데 밥이 없었다. 배는 고프고  뭘 사러 가기는 귀찮을 때 라면만 한 것이 있을까?


'라면이 뭐 어때서? 간단하고 맛있고 그럼 장땡 아닌가?'통화를 끊고 보니 반쯤 남은 라면이 퉁퉁 불어 있었다. 갑자기  라면이 보기 싫어졌다. 아직도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는 유리멘털이다.




우리 집에는 라면이 많이 있다. 큰아이는 오통통면과 비빔면을 좋아한다. 남편은 너구리랑 안성탕면을 즐겨 먹는다. 아들은 육개장사발면만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막둥이는 도시락 사발면을 좋아한다. 나는 오로지 진라면 매운맛이다.




식성이 다른 만큼 살 때마다 다섯 종류의 라면을 사게 된다. 어느 하나가 모자라면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신경을 쓴다는 건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섭섭하면 안 된다. 마트에 가기 전에 먼저 싱크대를 열고 우리 집에 뭐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마트에 가서 세일하는 라면을 사고 온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취향이 있는 반면 엄마의 으름장에는 꼼짝 못 하고 먹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나는 남은 음식들을 처리하듯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준다.



 쌀과 김치와 라면은 집에 많이 있을수록 든든하다.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에 나오면 티브이를 보고 있던 남편이 출출하다며 라면을 외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절대 안 된다고 버텨보지만 남편은 완강한다. 마치 지금 라면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이 비장하게 외친다.

"아, 라면 먹고 싶다" 티브이에 몰두한 척, 안 들리는 척하면 발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알고 있다. 밤에 먹는  라면이 얼마나 맛있는지. 하지만 결혼초에 58킬로그램이었던 남편은 내가 아이 셋을 낳는 동안 혼자서 뭘 그렇게 잘 드셨는지 80킬로그램을 찍으셨다.  나는 당장 눈앞의 욕망보다는  건강을 위해 과감히 남편의 청을 거절해야만 한다.



"오빠, 가서 체중계 재봐. 79키로면 라면 끓여줄게. 내가 귀찮은 게 아냐. 솔직히 오빠 건강 생각 안 하면 나 계란 넣고 정말 맛있게 라면 끓여줄 수 있어. 하지만 오빠 생각을 해 봐. 막둥이가 이제 9살인데 오빠가 지방간이랑 고지혈증도 있는데 응? 지금 꼭 라면을 먹어야겠어? 내가 오빠한테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 건 오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야. 난 오빠가 완전 오래 살기를 바래."




아무리 애를 써도 남편이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은 딱 하나다.

"오빠, 나 들어가서 잔다."

"배고파."

"참으세요."



남편의 입이 안방 문까지 따라온다. 그럴 때는 과감히 문을 닫아야 한다. 누군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렇다. 우리 남편은 내가 집에 있으면 커피 한 잔도 스스로 마시는 법이 없는 조선시대상남자다. 내가 20년 동안 잘못 키운 결과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행복하다. 라면에  콩나물과 마늘을 조금 넣으면 건강한 맛이 나는 것도 같다. 가끔 수프를 반만 넣고 신김치를 넣기도 한다.  꼬들거리는 면도 맛있고,  푹 익어서 계란과 어우러진 맛도 좋다.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어쩌겠는가. 먹고 나면 물을 1리터씩 마시고 손가락이 팅팅 부어도 먹을 때는 행복한 걸.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라면을 먹고 나면 속이 너무 부대낀다고." 나도 그렇다고 말하며 우리는 서로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좋아하던 라면도 마음대로 못 먹는 우리가 되어 버렸다. 몸에 좋은 것만 먹고살며 스트레스를 받느니 그냥 당기는 걸 먹고살면 안 될까? 어차피 몸은 거짓말을 못 해서 아무리 먹고픈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날이 온다.



육개장사발면의 국물에서 조미료맛이 확 날 때, 라면을 먹으면 하루종일 거부감이 들 때, 짜장라면 한 개도 다 못 먹을 때 그때 나는 내가 너무도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진다.



돌도 씹어먹던 그때가 아주 조금은 그리울 때가 있다. 밤에 라면을 먹어도 붓지 않는 14살 큰 딸이 진심 부럽다. 이 글을 쓰면서 라면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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