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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Nov 20. 2023

어쩔 수 없는 일에 대응하는 법

마음은 무거워도 대처는 가볍게

큰 아이는 12살 때 처음 충치치료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치아관리에 신경 썼다. 군것질을 잘 안 하는 아이였다. 깔끔한 성격이라 밥을 먹고 나면 꼭 3분 이내에 양치질을 했다. 수소문을 해서 잘한다는 치과를 찾아다녔다.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았다. 



 충치치료를 한 치과에서 아이의 영구치 3개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파노라마사진을 찍었는데 젖니 위에 있어야 할 영구치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의사 선생님은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하며 앞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른쪽 위에 있는 어금니와 아랫니 어금니 두 개가 젖니였다. 선생님은 최대한 관리하며 빠지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만 18살이 넘어야 임플란트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어제저녁으로 고기를 먹던 딸이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이가 흔들린다고 했다. 어느 쪽이냐고 했더니 오른쪽 어금니라고 대답했다. 순간 기분이 싸했다. 영구치가 없는 이였다.



 오늘 학교를 조퇴한 딸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 선생님이 불러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딸의 이를 보여주었다. 어금니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모르는 내가 봐도 뺄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았다. 딸은 어금니를 뺐다.

 딸은 지금 14살이다. 선생님은 이때쯤 젖니가 빠지는 게 맞는 거라고 하셨다. 임플란트를 하려면 5년은 있어야 한다. 그동안 어금니하나가 없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



 이를 빼고 나오는 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도 아마 놀랐을 것이다. 앞으로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었다.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구치가 없이 태어난 것도, 젖니가 빠진 것도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속상했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최대한 귀 기울여 들었다. 당장 일어난 일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시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만날 때가 있다. 사건의 경중을 떠나 일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럴 때는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당장 앞에 있는 일을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길을 가다 눈보라를 만나면 옷깃을 세우고 최대한 몸을 낮춘 채 묵묵히 걸어야 한다.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 길은 언젠가 끝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모험담을 늘어놓을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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