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Nov 23. 2023

나만의 기도

매일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아빠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트럭에 수박이나 생선을 싣고 팔러 다니거나 코란도를 끌고 다니며 사냥을 하곤 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했지만, 차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놀러 다녔던 기억이 있다. 비록 차를 타고 가다가 물이나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걸어가거나 동산을 오를 때는 다 같이 내려 차를 밀거나 했지만, 그래도 차가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 어릴 적 안방벽에 걸려 있었던...

엄마는 딱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 집 작은 안방 벽에 붙어 있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액자를 걸어놓았다. 뚜렷한 대상은 없었지만, 간절하게 기도했다. 매월 초하루에는 밥과 국을 하고, 과일과 명태와 돼지고기 삶은 것으로 상을 차리고 절을 했다. 엄마는 초하루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기도를 잘 드려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초하루를 챙겼던 엄마가 차사고로 돌아가시는 걸 보며 나는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냐고 묻고 싶었다.




엄마가 정말이지 아빠를 위해서만 기도를 한 것이었을까? 엄마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무언가를 빌어본 적이 없었을까? 나는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맥아더 기도문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주시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배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게 하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하고 높은 이상을 갖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먼저 다스리게 하시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또한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 있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넓은 아량에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운 데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게

하소서.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바라는 것을 기도로 표현하다니. 어쩌면 아들이 맥아더가 생각한 대로 잘 자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에 물어봤더니. 역시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였던 최고의 군인도 아들만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니. 그래도 늦둥이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쓰는 아버지라는 점에서는 좀 멋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기도 -캐리 마이어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해 주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공손히 대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라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비열함을

없애주시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맥아더기도문이 격식을 갖추고, 최대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게 쓴 글이라면 어머니의 기도문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읽는 내내 피식 웃으며 공감했다. 이 엄마도 자식이 무진장 말을 안 듣나 보다. 오죽하면 잔소리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까? 솔직하게 마음을 담아 올리는 기도는 간절함이 배가 된다. 혼내고 반성하고 자책하고. 엄마가 잘못했을 때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본다.




부부의 기도

동생이 결혼선물이라며 십자수액자를 내밀었을 때 울컥 눈물이 났다.



 동생은 매일 밤 잠도 안 자고 침침한 조명 아래서 십자수로 액자를 만들었다. 언니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길 바라며 새겨 넣은 동생의 마음은 그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고 기뻤다.



 액자를 안방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매일

읽으며 지냈다. 예전에는



포스팅을 위해 오랜만에 액자를 내리고 먼지를 닦아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말을 걸었다.


-엄마, 그런데 왜 이렇게 안 해?

-응?

-엄마랑 아빠는 이렇게 안 하잖아.

-아니야. 이렇게 해. 잘 들어봐

사랑을 줄 줄 알고 - 사랑 주잖아. 사랑의 매.

어려울 때 곁에서 지켜주게 하시고- 어려울 땐 정신줄 놓지 말라고  큰소리치고

벅찰 때는 서로가 나눠지게 하시며 - 벅찰 때가 없어서 그건 잘 모르겠고....


- 엄마, 그게 뭐야.

-원래 결혼이 다 그런 거야. 우리도 너네 태어나지 않았을 때는 한 번도 안 싸웠어.

-정말?

-아니. 거짓말. ㅋㅋ



포스팅 핑계로 액자가 깨끗해졌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그래, 내가 이 글 읽으며 참 많이도 참았었지.

지금은?


서로 자기가 참고 산다고 한다.

 누가 더 참나 내기하고 있다.

나니까 너랑 산다는 말을 서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밤에는 감사기도를 하고 싶어졌다. 모든 게 다 감사한 하루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순하게 생각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