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Nov 24. 2023

알 수 없는 것들

그것도 어찌보면 인생인 것을

한 때 성했던 것들의 몰락에는 어떤 애잔함이 담겨 있다.

오래된 왕조의 낡은 성벽, 풀이 무성한 집터는 터무니없이 넓고,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스스로 늙어가며 자신을 파괴한다.



 화려하고 빛났던 시절을 기억하며.

노쇠하고, 쓸모없고, 관심밖에 나가 버린 것들.



넓은 마당에는 여름비를 맞아 허리만큼 풀이 자라 있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거나 커피를 마셨을 넓은 나무 데크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밑으로 빠지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 걸을 때마다 나무가 삐걱 소리를 냈다.



출입구에 대문이 없는 건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크고 늙은 개가 그늘에 누워  나를 쳐다본다. 짖을 힘도 없는 듯 쳐다만 본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고, 낡았으며, 우울해 보이는 곳이었다.



한때 이 집은 동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이었다. 동네 땅을 거의 차지했다는 최 씨 부자는 아들 셋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주고 죽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온 둘째 아들은 절에 들어간다며 형과 동생에게 재산을 관리해 달라는 말을 하며 훌쩍 떠났다, 큰 아들은 어쩐 일인지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아 재산을 관리해야 했던 막내아들은 형님의 두 아들에게 인감도장을 달라고 했다. 10대의 두 조카는 기꺼이 작은아버지를 믿고 도장을 맡겼다. 막내는 물려받은 재산으로 해안도로에 기가 막힌 펜션을 여러 채 지었다. 한창 제주살이가 시작되던 때라 사업은 불붙듯이 번창했다. 막내는 탁월한 장사수완과 감각으로 될만한 곳마다 찾아서 펜션을 지었다. 직원이 100명 넘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문중에서는 그렇게 잘 나가면서도 조카들을 돌보지 않음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조카 두 명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몸이 약했던 둘째는 영양실조까지 걸렸다는 말에 문중어른이 나서서 중재를 했지만 막내는 자신이 다 알아서 한다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딱 살 수 있을 만큼의 돈만 지원해 줬다. 어린아이들이 돈을 너무 많이 가져 있으면 위험하다며 내가 잘 알아서 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공부나 하고 있으라고.



막내의 사업이 번창할수록 조카 둘은 눈엣가시가 되었고, 어느 순간 큰 조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또 얼마 안 있어서 작은 조카도 죽었다.

좁은 동네였다. 친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채 빠르게 번져 나갔다.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수군대기 시작했다. 조카들이 어떻게 죽었다는 것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소문은 너무도 무섭고 지저분했으며 더러운 모습을 하고 돌아다녔다.



막내아들의 죽음.

직원들과 회식도중에 목에 이물질이 끼었는데 119를 타고 가는 도중에 죽었다.  지금껏 떠들어대던 사람들은 소름이 끼쳐서 말을 아꼈다.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그저 아고. 아고.. 만 했다.

세상에는 말로 설명이 가능한 일들이 있는 반면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말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들이 생기곤 한다. 상식과 비상식이 공존한다. 원인과 결과가 언제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어제 나는 그 집에 갔다 올 일이 있었다. 혼자되신 형님께 할 말이 있어서 찾아갔던 하얀 이 층집.

한때 높은 담에 둘러싸여 낡은 동네에서 혼자 돋보였던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왠지 슬퍼졌다.



정돈되지 않은 집안은 사는 사람의 마음 같았다.  낡아가는 나무데크는 예전의 화려함이 사라진 채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예전에는 사는 게 거의 비슷비슷했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있는 뻔한 살림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땅값이 정신없이 올랐다. 사람들은 자꾸  뭔가를 기대하게 됐다. 더 이상 뻔하지 않게 되었다. 비교하기 시작하자 삶이 불행해졌다.



사촌이 땅을 사자 배가 아픈 게 아니라 사촌이 땅을 팔자 배가 아픈 시대.

그렇게 다 가지면 과연 행복할까?

난 잘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