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Nov 27. 2023

꿈은 이루어진다

단,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글 잘 쓰셨네요. 지금까지 왜 글을 안 쓰셨어요?


내가 제출한 소설을 읽으신 작가님이 툭하고 말을 건넸다. 나는 훅하고 숨이 막혔다.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작가님은 소설을 여러 권 출간하신 분이셨다. 그분의 책을 동경하며 읽었다. 그런데 그분이 선뜻 내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다. 작가님께 메일로 소설을 제출하고 줌으로 만나는 날까지 긴장해서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래희망에 소설가라고 적은 이후 한 번도 꿈이 바뀌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문학상이 내 꿈이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공부보다 책을 더 좋아했던 나는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는 것이 목표였다. 동아리는 언제나 문학동아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법 큰 상을 여러 번 받았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심지어 동네 사람들도 내가 쓴 글은 안 읽었지만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다.


국문과에 입학하고 소설창작반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조만간에 우리 동네에 현수막이 붙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대학시절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소설창작반 사람들은 글을 너무 잘 썼다. 내가 쓴 글은 소설이 아니었다. 합평시간에 호되게 깨지기를 몇 번 하고 나서 나는 소설창작반을 나왔다.


먹고사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빨리 취직을 해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려야 하는 K장녀였다. 선배가 방송국 새끼작가자리를 소개해줬다. 한 달에 50만 원이었고, 글을 많이 써야 했다. 나는 두 달 일하고 그만뒀다. 50만 원으로 글만 쓰고 살 수 없었다. 그 후 입시학원 국어강사를 하다 결혼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학교를 좋아했다. 학원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혼 전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글을 실컷 쓰라며 나를 꼬셨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도 하고, 하루종일 책만 읽어도 좋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걸 믿은 나도 순진했다. 결혼 후에는 많은 것이 달라진다.


대학원에 가지 못했다.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했다. 아니다. 네이트온에 틈틈이 결혼에피소드를 올리면 오늘의 톡 같은 데 나왔다. 방통대에 입학원서를 넣자 큰 아이가 생겼다. 7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공부보다는 안전한 출산이 우선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수기를 쓰고 응모를 해서 두 번 당선됐다. 그제야 남편이 나를 아주 조금 인정했다.


막둥이가 6살이 되었을 때였다. 생일선물, 결혼기념일 선물 다 필요 없으니 사이버대학 등록금을 내 달라고 했다. 우리 집의 경제권은 모두 남편에게 있다. 남편은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리고 나는 경희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했다. 신나게 공부하고 글을 썼다. 성적도 좋았다. 장학금도 탔다.


문제는 소설이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소설가였는데 소설창작에서만 점수가 제일 나빴다. 외우고 분석하고 요약하는 건 잘하는데 창작이 문제였다.  오랜 시간 동안 전업주부였던 나는 쓸 이야기가 한정돼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막둥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책 읽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100일 동안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올렸다. 그렇게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나자 내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다시 100일 동안 글쓰기를 했다. 생각날 때는 하루에 세 편의 글도 올렸다. 신나게 쓰고 올렸다. 자판에서 손가락이 춤출 때 기분이 좋았다.



그때 블로그이웃님이 작가님을 소개해줬다. 작가님 덕분에 나는 두 편의 단편소설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오늘 신춘문예 담당자 앞이라고 적고 우편을 보냈다.



주소를 적는데 손이 떨렸다. 얼굴이 빨개졌다.



너무도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면 신춘문예병이 도졌다. 소설가가 되고 싶으면서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간절히 바랐던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우체국에 데려다주며 남편은 "첫 술에  배 안 부른다."는 말을 점잖게 했다. 김칫국먼저 마시는 게 특기인 나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는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응모가 목표였다. 나만의 완성된 소설을 갖는 게 소원이었다.


한 편의 소설만 완성시키면 다음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못해고 지금까지 살았다. 마음속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소설가라는 꿈을 너무 소중해서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가슴에 품고 살았다. 오늘은 그  꿈이 처밖에 나온 날이다.


우체국에 들어갈 때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우편물을 부치고 나오자 그제야 우체통이 보였다. 예전에는 동네에도 우체통이 많았다.  우체부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뛰쳐나가서 내게 온 건 없나 하고 잔뜩 기대했었다. 그때처럼 설렌다. 아직도 뭔가를 생각하면 배시시 웃음이 나와서 좋다. 얼굴이 빨개져서 좋다. 오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서 좋다. 오늘이 너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 수 없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