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Dec 05. 2023

고슴도치딜레마-쇼펜하우어

우리가 오래 가는 이유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1851년 발표한 저서에 고슴도치 우화가 등장한 것이 용어의 기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자신의 저서 《소논문집과 보충논문집(Parerga und Paralipomena)》에 고슴도치와 관련한 우화를 남겼다.





쇼펜하우어



추운 겨울날,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의 바늘이 서로를 찔러서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추위는 다시 고슴도치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서로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거나 잠을 잔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는 이제 인간을 이야기한다


인간이라는 고슴도치들도 필요로 인해 관계를 맺지만 가시투성이 본성으로 서로를 상처 입힌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의’를 발굴했다. 예의로 인해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만족되었고 가시에 찔릴 일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남을 찌를 수도, 자신을 찌를 수도 없었던 사람은 자신만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Freud)가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 1921)》에서 고슴도치 딜레마를 인용하면서 심리학의 영역으로 널리 인정되었다.








프로이트


고슴도치 딜레마의 사례에는…


샤를 드골(Charles André Marie Joseph De Gaulle) 전 프랑스 대통령이 재직했던 10년 동안 비서실, 사무실, 개인 참모부의 고문과 참모들의 임기는 2년을 넘지 않았다. 군인 출신인 드골은 군대처럼 인사이동의 유동성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에 영향을 받아 직원을 한 자리에 오래 배속시키지 않고 적시에 다른 부서로 보냈다.








샤를 드골(왼쪽)


이러한 인사이동으로 인해 직원들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고, 드골은 언제나 새로운 의견을 듣고 진취적으로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얻었다. 하지만 드골과 참모진이 친밀한 정서적 유대관계는 쌓을 수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평범한 어머니는 자식을 극도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싫어하는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다고 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모순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에 비해 자녀에게 덜 공격적이라고 한다.








자신의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녀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는 부모는 자녀가 사춘기에 이르면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아이는 점차 독립성을 가지려고 하는데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집착과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서로를 존중하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슴도치 딜레마 [Hedgehog's dilemma, Porcupine’s dilemma]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심리 편, 이동귀)







큰 아이가 8개월이 됐을 때부터 3년 동안 이마트 문화센터를 부지런히 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엄마들과 아직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 네 명은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나이도 다 다르다. 공통점은 오로지 10년생 호랑이띠의 엄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 년 동안  10만 원짜리 적금을 붓고 만기 되는 달에 만나 맛있는 걸 먹는다. 



큰 아이가 커가는 사이 우리에겐 많은 일들이 생겼다. 나는 두 아이를 임신했다가 출산을 했다. 다른 엄마들도 이사를 하거나 취직을 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도 있었다. 일이 생길 때면 제일 먼저 연락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때도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만날 때도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맛있는 걸 먹는다. 세 명이 만나도 4인분을 시켜 먹을 때도 있다. 나보다 6살 어린 막둥이는 맛집을 잘 알고 있다. 그 친구에게 장소를 맡기면 200%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나보다 4살 많은 언니는 아는 것도 많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돈도 잘 벌지만 나이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게 얘기를 하는데 주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 본받을 게 많은 사람이다.




우리는 세 시간을 넘게 앉아 있지 않는다. 각자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한창 열이 올랐을 때 미련 없이 작별인사를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한다. 




내가 이 모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건 이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싫은 소리를 한 번도 안 한다는 것이다. 네가 최고다. 잘한다. 예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는데 잘 못하는 게 사람이다. 알면서도 삐딱하게 보고, 아닌데 굳이 고집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붙잡아주는 사람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믿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더 큰 힘이 난다.




냉철한 이성으로 분석해 주는 것도 좋지만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는 사람이 그리울 때도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 말 대잔치를 하거나 활짝 웃게 된다.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들의 거리 두기처럼 우리는 서로를 아프게 할 거리를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으니까 조심하는 사이다. 


그래서 오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은 이루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