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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17. 2023

동네 친구들

촌년이라 좋습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한 번도 제주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해안도로를 따라 일주도로가 나 있던 어린 시절에 제주시에 가려면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완행버스를 탔다. 직행버스는 비쌌고 우리 동네를 지나쳐갔다. 차부(버스 정류장)까지 15분 걸려서 간다. 시멘트로 바람을 가린 차부가 일주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서귀포를 가려면 길을 건너서 기다렸다. 두 시간 걸려 제주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나는 멀미가 심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완행버스 안에서는 꼭 트로트메들리가 흘러나왔다.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가며 잠을 자다 보면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이었다. 여자 13명, 남자 12명이었다. 가끔 전학생이 왔다가 다시 전학을 갔다. 졸업할 때도 25명이었다. 나는 초등학교2학년 때 제주시에서 전학을 왔다. 나는 한동안 학교에서 구경거리가 됐다. 사람들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렸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도 아빠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나중에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촌에는 할 일이 많았고,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우리 집 앞에 시멘트길이 있었다. 아침 6시가 되면 동네에 있는 모든 소들이 나와 행진을 했다. 소모는 사람은 동네 어른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백 마리가 넘는 소들이 떼를 지어 고개 위를 넘어갔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왔다. 시계보다 더 정확했다. 아침저녁으로 소구경을 했다. 그중에 우리 집 소는 한 마리도 없었다.


없는 건 소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밭이 없었다. 농사를 짓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밭을 빌려서 짓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란 대개 아빠의 친구였고, 내 친구들의 밭이었다. 가을이 되면 과수원집들은 바빠진다. 친구들은 귤을 따느라 나와 놀지 못했다. 엄마는 남의 집에 가서 귤을 따 주고 귤을 얻어왔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삼촌과 동생들이 살았다. 매일 싸우고 누군가는 울었고, 항상 화가 난 사람이 있었다. 어디선가 콘테나로 얻어온 귤을 까먹을 때만 우리는 조용했다. 과수원집에선 귤이 썩어나간다는데 우리 집은 언제나 귤이 부족했다. 2월까지 귤을 먹을 수 있는 과수원집이 부러웠다. 친구들 중에 과수원이 없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또 없는 게 있었다. 가난한 동네지만 가을에 귤을 팔고 나면 사람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그때 검은 가방을 멘 사람이 동네를 돌아다녔다. 우리 집에도 온 적이 있었지만 빨리 나갔다. 그 사람은 세계문학전집을 팔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가보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책들이 있었다. 100권의 책이 한꺼번에 꽂혀 있는 책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는 하나도 안 친한 심지어 나를 괴롭히기까지 했던 남자아이네 집에 자주  갔다. 그 친구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 집에는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이 있었다. 세계명작동화도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았던 그 친구는 책도 읽지 않았는지 책이 깨끗하고 빠닥빠닥했다. 나는 그 책들을 전부 읽고 나서 다시 그 친구와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나는 레마누하면 기억나는 게 뭔지 알아?

어제 동네친구들과 연말모임을 했다. 근황을 묻다 요즘 글을 쓴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5학년 땐가. 레마누가 책을 보면서 우는 거야.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랬던지. 아니, 어떻게 책을 읽으면서 울 수가 있어?

-그러고 보니까 나도 생각나는 게 있어. 우리가 용호네 집에 가서 놀 때 얘는 책만 읽었잖아. 라면도 안 먹고, 공기도 안 하고.

-근데, 너는 책이 정말 좋아?

-응. 난 책 읽을 때가 제일 좋아. 글 쓸 때도 좋고.

-난 책만 읽으면 잠이 오던데.

-나는 할 말은 많은데 글로 쓰려고 하면 머리가 딱 멈추는 거 같아. 정말 재미있는 얘기들도 글로는 못 쓰겠더라.

-그럼, 정희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이나 재밌는 얘깃거리를 나한테 말해 줘. 그럼 내가 쓸게. 너는 말하는 사람하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는 거야.


레인보우에서 두 명이 빠졌다.

그 후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24년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자라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찍었던 사진들을 단체톡에 올렸다. 어제 독감 때문에 못 나온 친구가 자기는 아픈데 남편은 모임에 굳이 갔다며 화난 이모티콘을 올렸다. 그래서 지금 떠오르는 걸 써보라고 했더니

아귀찜, 칭다오, 양꼬치라는 답이 왔다. 그럼 그 단어가 왜 생각났는지를 또 써보라고 했다. 골치가 아픈 이모티콘을 보낸 친구. 말은 안 해도 인상 쓰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다음에 만나면 네 얘기를 들려줘. 그럼 내가 한번 써 볼게.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예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다 아는 사람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좋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 가끔 만나 잘 살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도 좋다. 어떻게 살았는지 뻔히 알고 있다.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 좋은 말만 하게 된다. 수고했다는 말과 대단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글을 쓰다 보면 한없이 작아질 때가 있다. 브런치에서 멋진 글을 쓰는 작가님들,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소설을 쓴 소설가들을 보면 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넘사벽 같다. 내 글을 써야 하는데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럴 때 친구들을 만나면 좋다. 내 친구들은 책을 읽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단체톡에 가끔 올리면 극찬을 해 준다. 엄지척을 마구마구 날려준다. 친구들 앞에서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우물 안 개구리라도 좋다. 우물이 엄청 넓을 수도 있고, 우물 안에 별별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안의 우물 안에서 나는 오늘도 바닥으로 바닥으로 내려간다. 어제 만난 친구들의 격려에 힘입어 뭐라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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