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럴 때가 있다.
뭔가 목표를 세우고 한참 달려가다가 갑자기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매일
한 권씩 읽고 도서포스팅을 하기.
만보 걷기.
먹는 걸 적고 다이어트를 하기.
또박또박 눌러쓸 때는 다 해 낼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을 한 내가 대견하다.
하루를 충실히 채운 날은 어깨를 으쓱거린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듣는 이 없어도 히죽거린다
책 읽고 글 쓸 때 제일 신경 쓰는 건 집안일이다
청소를 제치고 빨래를 쌓아놓는다
아이들에게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라고 말하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오늘 식기세척기를 점검하러 온 분이 묻었다.
얼마나 자주 사용하세요?
두 끼에 한번 돌립니다.
많이 사용하시네요.
그게 많은 건가요?
보통 4인 가족에 요즘 집에서 삼시세끼 먹는 집이 별로 없잖아요. 대부분 이틀에 한 번씩 돌리더라고요.
저희 집은 5인 가족에 삼시 세끼를 다 먹습니다.
12인용 식기세척기에 그릇은 언제나 꽉 차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니 와인을 마실 시간이 없다. 저녁이 단조로워졌다. 생활이 깔끔해진 것 같긴 한데 술을 마시고 알딸딸한 상태에서 절로 부르는 노래가 안 나온다. 신이 나야 글을 쓰는데 요즘은 의무감이 앞선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과정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문체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좋아하는 책만 읽지 말고 과감하게 전혀 다른 장르도
도전해 보라고.
그런데 굳이 나를 버려야 하나?
일요일에 학교에 시험공부하러 간 적이 있다. 나는 시험기간에는 언제나 학교나 도서관을 갔다. 공부를 딱히 잘하거나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학교와 도서관을 좋아했다. 일요일 학교는 조용했다. 아이들이 한 두 명씩 교실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나는 책가방을 걸어놓고 친구와 짝사랑하는 오빠의 교실에 몰래 들어갔다. 교실 뒤편에는 학생들의 이런저런 활동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한다."
자신의 좌우명을 적어 놓는 공간에 그 사람이 써 놓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알았다. 떠나려고 하는구나. 그도 나처럼 이 좁은 시골학교를 못 견뎌하는구나. 어떻게든 버티고 살면서도 언제나 바다 너머를 꿈꾸었던 사람. 대학생이 되자마자 육지로 나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
열다섯의 눈에 "도전"은 그런 의미였다. 지금 상황에서 완전히 바뀌는 것. 편안함을 버리고 고된 길로 들어서는 것. 힘들지만 해볼 만한 것. 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것.
나는 한 번도 도전을 해 본 적이 없다. 간절히 뭔가를 원한 적도 없다. 심장이 터질까 힘껏 달리지 않았다. 상처를 받는 게 싫어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
힘들 게 살 것만 같아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사람들의 책을 읽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가는 사람들, 자신만의 세상을 가꾸는 사람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집을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 뛰다가도 책을 덮는 순간 빠르게 나로 돌아온다.
따뜻한 아랫목을 포기하지 못한다. 뭔가 해야 할 것은 알겠는데 하려면 힘이 너무 들까 봐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일어설 때마다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고난 없는 성공은 무의미하다. 공들인 일은 티가 난다. 알고 있는 걸 동원해서 혼잣말을 하고 있다. 햇빛바라기하는 노인들처럼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진지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