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와 어른되기
초등학교6학년 지영이는 요즘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자꾸 자전거가 눈에 보인다. 지영이네 아빠는 여자애가 무슨 자전거냐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지영이는 동네아이들이 다 타고 다니는 자전 건데 아빠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짓곤 했다. 그런데 은경이가 하루는 지영이에게 자전거를 배워준다며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지영이는 그날부터 은경이네 집에서 해질 때까지 자전거를 배웠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운동신경이 좋은 지영이는 며칠 만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빠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배웠다는 사실과 뭔가 비밀이 생겼다는 게 지영이를 잠 못 들게 했다.
자전거를 매일 타고 싶다. 하지만 지영이네 집에는 은경이처럼 작고 예쁘고 앙증맞은 바구니가 달린 여자용 자전거는 없었다. 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성인남성용이었다. 하지만 은경이네 자전거보다 바퀴가 더 크고 단단해 보였다. 분명 타면 엄청 신날 것이 분명했다.
마당에서 자전거가 계속 지영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넌 못 탈 걸?
지영이는 한번 자전거에 올라타려다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손잡이를 잡고 다리를 올리기에는 지영이의 다리는 짧았고, 자전거의 안장은 높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지영이는 요리조리 자전거를 돌아보던 중 남자아이들이 큰 자전거를 탈 때 어떻게 탔는지를 기억해 냈다. 자전거를 옆으로 비스듬히 눕히고 얼른 올라타서 중심을 잡는다. 다리가 닿지 않으면 일어서서 탄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영이는 할아버지의 자전거에 올라탔다. 신나서 마당을 몇 바퀴 돌았다.
자신감이 붙은 지영이는 마당밖을 나가기로 했다. 부모님은 늦게 돌아오실 거다. 할아버지는 옆집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고 있다. 자전거를 끌고 조심조심 마당을 나가 길에 선 지영이의 눈에 멀리 동산이 보였다. 걸음걸이로 이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지영이가 좋아하는 넓은 들판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올라가려면 작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헥헥거리며 올라가야 한다.
그래, 저길 가보자. 자전거로 올라가면 분명 빨리 갔다가 올 수 있을 거야.
올라가는 것은 자전거로 올라가는 거나 걸어가는 거나 똑같이 힘들었다. 아니다 지영이는 자전거페달을 밟기 위해 일어서서 안간힘을 썼지만 동산만큼 기울어진 채 자전거는 영 속도를 내지 못했다.
힘들어서 짜증이 나는지 짜증을 내자 더 힘들어지는지 몰랐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자전거에서 내린 지영이는 결국 어깨만큼 올라온 자전거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힘이 빠졌지만 기분이 좋았다. 힘들어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너무 좋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말도 지영이는 처음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내려가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지영이는 다시 몸보다 큰 자전거를 옆으로 눕히고 난 후 얼른 다리를 반대쪽 페달로 갖다 댔다. 자전거는 지영이가 하는 대로 일어서고 움직였다. 지영이는 왠지 자신이 부쩍 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훨씬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일어섰다. 내려가는 길이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영이는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아서 놀랬다.
굳이 페달을 힘들게 돌리지 않아도 자전거는 혼자 힘으로 씽씽 잘도 달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지수의 머리카락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지수는 가슴이 펑 뚫리는 것 같았다. 말대꾸만 하는 얄미운 동생들은 절대 모를 이 기분. 이 시원함. 지영이는 아, 이래서 자전거를 타는구나 생각했다.
지영이는 몰랐다. 동산에서 내려오는 자전거의 위험성을 지영이는 알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지영이가 아는 것은 자전거손잡이를 꽉 잡고 페달을 열심히 돌리며 가끔 따르릉따르릉 울려준다는 것뿐.
지영이의 자전거는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가슴도 덩달아 빨리 뛰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지영이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몸이 날아올랐다 금방 떨어졌다. 지영이는 하수구역할을 하는 길 옆 고랑창에 빠졌다. 다행히 풀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지영이가 떨어진 앞 뒤로 큰 돌들이 공사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지영이는 떨어지면서 자신이 죽는 줄 알았다가 너무 아파서 안 죽었구나 싶었다.
일어서는데 바짓가랑이 사이가 시원했다.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니 가랑이 양쪽이 흉하게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곳은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바지는 넝마처럼 헤어졌다. 온몸이 따가웠다. 지영이를 내던진 자전거는 저 만치서 물구나무를 선 채 부질없이 바퀴만 돌리고 있었다.
지영이는 저 혼자 속도를 내다 나를 이 꼴로 만들었구나 싶어 자전거가 미웠다. 천천히 걸어가는데 온몸이 따끔거렸다. 멀리 집이 보였다. 지금쯤 따뜻한 방 안에서 만화를 보고 있을 동생들이 부러워졌다. 괜히 나왔어. 뭐 한다고. 엄마가 알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근데 너무 아프다.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내려가는 지영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날 지영이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고, 백 개 정도의 가시를 빼느라 동생들이 출동했으며, 할아버지는 타지도 않았던 자전거의 체인이 왜 나갔는지 영문도 모른 채 자전거를 수리하러 가야만 했다.
지영은 그때 내리막길의 무서움을 알았다. 힘들게 올라갔는데 내려오는 건 한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 다닐 때는 성적이, 직장에 다닐 때는 돈이, 결혼을 해서는 남편과의 관계가 모두 그러했다.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 놓고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몇 번씩 경험했다. 올라가는 게 힘이 들수록 내려오는 시간을 오래 끌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영은 속도를 즐기는 것보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재미를 아는 어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