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Sep 30. 2024

예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고등학교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같이 수능을 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친구는 경상대에 나는 인문대에 입학했다. 과는 달랐지만, 우리는 자주 만났다. 만나서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굴이 하얀 그 아이를 친구들은 "백지"라고 불렀다.


백지는 웃으면 보조개가 깊게 패였다. 검은 눈동자가 크고 빛났다. 달릴 때는 기린처럼 엉성했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꼭 두 번은 거절하고 세번째 불렀다. 백지는 내가 열 번 말하는 동안 한 번 정도 툭 내뱉는 말을 했는데, 그게 정곡을 찌를 때가 많았다. 백지는 재미있는 친구였다.


백지랑 둘이 노래방에 가서 두세시간 목놓아 노래를 불렀다. 백지는 술을 잘 못 마셨고, 나는 술만 죽어라 마셨다. 그런데 언제나 취하는 건 백지였다. 백지는 술을 마시면 얼굴이 백지장이 됐다. 


나는 연애를 할 때는 백지와 만나지 않다가 헤어지면 울면서 전화했다. 백지는 언제 어디서든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내가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백지는 내게 언제나 돌아갈 집같은 친구였다. 그래서 그랬다.


결혼식 날 제일 일찍 온 친구도 백지였다. 백지는 내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가 7년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을때도 백지는 변함없이 내 얘길 들어줬다. 결혼하기 전보다는 덜 만났지만 만나면 어색하지 않았다. 백지도 얼른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와 함께 결혼와 육아에 대해서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를 소개시켜 주고, 만날 때마다 사귀는 사람 없냐고 물었다. 백지는 빙그레 웃으며 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큰아이의 돌잔치에 백지는 제일 먼저 와서 늦게까지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아이를 봐주면서 오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 백지가 세상을 떠났다.  백지의 선택이었다.


돌이 조금 지난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장례식장으로 가는데 황당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식구들 말로는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몰랐다. 나는 정말 몰랐다.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갰지만 정말 몰랐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병동에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다정하고 친절한 정다은 간호사는 환자의 자살 이후 갑작스럽게 우울증에 빠진다. 그때 정다은의 절친인 송유찬은 정다은을 끊임없이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의사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 주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백지에게 전화를 하면 어디 아프냐고 먼저 묻곤 했다. 목소리에 왜 그렇게 힘이 없냐고 하면 백지는 괜찮다고만 했다. 점심먹자고 해도 영화보러 가자고 해도 백지는 나중에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조금 섭섭했다. 나한테 섭섭한 게 있나? 생각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한숨자는 게 절실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나는 백지에게 신경쓰는 것을 미뤘다. 나도 살아야 했으니까 .


백지는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 들어갔다. 가뜩이나 마른 아이가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드라마에 몰입하다 보니 정다은의 상태가 백지같아서 울면서 봤다. 미안했다. 나의 무심함이. 친구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못 해줬던 그때의 내가 부끄러웠다. 지금도 가끔 백지는 꿈속에서 나와 학교를 다닌다. 수다쟁이에 활짝 웃는 백지를 보면 꿈이라도 좋다. 착하고 예쁜 사람들은 왜 빨리 세상을 떠나는건지 정말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영적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