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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Sep 07. 2024

원영적 사고

오히려 좋아

원영적 사고 : 여자 아이돌인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사고를 말하는 유행어이자 밈이다. 완전 럭키비키나 오히려 좋아로 통한다. 원영적 사고는 단순 긍정적인 사고를 넘어 초월적인 긍정적 사고를 뜻하는 말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확고한 낙관주의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즉,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나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중학교2학년인 큰 딸과 원영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역시 오래 전부터 원영적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떨어뜨려 깨졌다. 너무 오래돼서 지겨웠는데 오히려 좋아. 예쁜 걸로 사야지. 씽크대에서 간장을 꺼내다 잘못해서 간장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참에 부엌바닥청소나 해야겠다. 씽크대도 닦아볼까? 



하지만 원영적 사고가 언제가 가능한 것은 아니여서 시간이 없거나 마음이 조급할 때는 화부터 내고 보는 나는 다혈질의 B형여자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학교 방과후 수업 때문에 세 남매가 8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각자 학교에 내려주고 2시간동안 도서관에서 밀린 글을 쓸 생각으로 노트북을 챙겼다. 도서관 입구에 있는 휴게실은 열람실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라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커다란 유리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는데, 어디선가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살펴보니 내가 앉은 자리에서 의자로 5개 떨어진 곳에 중년여성이 줌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휴게실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거나 열람실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어서 조용한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가 도드라졌다. 이어폰을 낀 게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까지 고스란히 들렸다.


조금 있으면 끊겠지. 하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켜고 어제 쓰다 만 소설을 쓰는데,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일적인 말은 끝난 듯 마지막 인사까지 했는데(조용한 가운데 두 사람이 줌으로 하는 이야기라 들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기 시작하더니 건강부터, 최근에 다녀온 병원과 먹는 약, 자녀의 근황토크이 3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화가 났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나 다시는 안 볼 사람에게 친절한 편이지만, 가끔 선을 넘거나 도가 지나친 사람을 못 견뎌한다. 그런 날 보며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말한다. 


내가 그녀에게 화가 난 것은 첫째, 아무리 휴게실이지만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도서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도 다 들리게끔 줌으로 30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 기본적인 상식을 가뿐히 넘어서는 뻔뻔함



둘째,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라도 말 끝마다 교수님이니 출판이니, 연구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자신의 대단함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꼴사나운지 모른다는 것.



셋째, 그녀의 빈도덕적인 행동에 분개하느라 정작 소설을 한 줄도 못 썼다는 것(이건 소설이 막혀서 화가 났지 때문에 반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30분이 넘어갔고,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는 걸 보자 내 인내심이 바닥을 내리쳤다. 신경질적으로 노트를 찢어 쪽지를 썼다. 최대한 냉정하게 정중하게 쓰려고 했지만, 분노로 부들거려서 그런지 신경질적인 글씨가 나왔다.


나는 쪽지를 들고 그녀의 뒤에 섰다. 그녀가 돌아보면 쪽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옆에 있음에도 끝까지 노트북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돌아와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그녀는 여전히 이야기중이었다. 남편에게 전화해 그녀를 고자질했다. 남편은 너의 튼튼한 하체라면 충분히 싸워서 이길 것이라며 응원같지 않은 응원을 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그녀를 신경쓰며 나오지 않은 글을 뽑아내려고 끙끙거리기 싫었다. 맞은편에 있는 열람실에 갔다. 어제 우당도서관에서 검색했는데 없었던 책을 검색해봤다. 와. 제주도서관에는 내가 찾던 책이 전집으로 있었다. 완전 럭키비키였다.



신이 나서 전집중에 신중하게 5권을 골랐다. 이미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찼다. 책을 대출하고 돌아와 보니  그녀는 통화가 끝나 있었고 주위는 책읽는 소리와 누군가의 발자국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통화는 내 신경을 긁고 자극하고 심장을 뛰게 했다.

덕분에 나는 포스팅할 소재를 얻었고, 갑자기 신이 나서 글을 술술 썼으며(아무래도 남편에게 그녀의 흉을 본 것이 자극제가 된 게 아닌가싶다), 읽고 싶었던 책을 대출했으니


오히려 좋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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