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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Dec 07. 2023

당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노인의 독백

여기 치매에 걸린 88세의 노인이 있다. 50에 남편을 보내고 혼자 장사를 하며 딸 5과 막내아들을 키웠던 노인은 혼자서 화장실을 못 가는 신세가 되어 누워 있다. 치매는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한다. 노인은 기억하지 않아야 할 것을 잊지 않았고, 잊어야 할 것들을 기억했다. 하루종일 머리를 들고나는 생각과 추억을 다른 사람들은 노망이라고 불렀다. 노인은 점점 말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막내아들네 집에서 살았다. 남편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물려준 집이었다. 시내에 있는 마당 달린 이충집에서 며느리가 아들과 딸을 낳았다. 노인은 그때까지만 해도 손주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어린이집 차를 태워 보냈다. 노인의 인생이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노인의 이름으로 과수원과 밭이 있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밀린 숙제를 하듯 아들에게 명의변경을 했다. 5명의 딸들 앞으로도 섭섭하지 않을 만큼 재산을 남겼다. 


노인은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현명함에 만족했다. 그러나 어디 사람마음이 다 똑같을 수 있으랴. 하물며 사람은 들어올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것을 노인은 몰랐다. 아니다. 알면서도 내 자식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라 생각했다. 형제들 간의 재산싸움이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지금 서울에 있는 4번째 딸의 집에 누워 있다. 막내아들의 집에서 노인에게 묻지도 않고 노인은 비행기를 탔다.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 한 자식에게 재산이 간다는 말을 하며 4번째 딸은 남편을 설득했다. 노인은 똑같은 얘기를 2번째 딸에게도 들었다.


노인은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면 마음이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들은 노인 대하는 걸 똥오줌 못 가린 강아지처럼 했다. 노인은 분노와 치욕을 느꼈다. 기억하지 못할 거면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로 만들어 놓던지. 반짝 돌아오는 정신머리를 붙잡고 있을 때마다 자식들이 하는 행태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뜨면 보고 싶지 않은 것들만 보였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노인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가도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은 생각에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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