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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02. 2024

안으면 포근해

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


"안아줄까요?"

아이스크림을 먹던 남자가 뜬금없이 말한다.

놀란 여자가 쳐다본다.

"안으면 포근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다 말고,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이런 대사를 쓴 작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손석구는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고 사랑스럽게 표현했는지. 그날 이후 손석구에 빠져 들어가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렸을 때, 나는 유난히 엄마품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막내와 6살 차이가 났는데 동생이 젖을 먹을 때 옆에서 같이 먹었다고 엄마가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 말로는 막내가 3살 때 젖을 뗐다고 하니, 나는 9살 때까지 엄마젖을 물었다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따뜻했던 엄마의 품이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품을 파고들면 마음이 풀렸다.


하늘 같던 엄마가 점점 작아졌다. 나는 엄마보다 더 큰 몸뚱이를 잔뜩 오려 엄마의 크기에 맞췄다. 엄마는 밭에 갔다 오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누워 있었다. 몸집이 작은 엄마는  새우처럼 몸을 말고 옆으로 누워 잤다. 나는 어떤 날은 엄마의 등을 꼭 껴안고 한참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엄마 앞으로 가서 엄마의 팔을 풀어 내 등으로 갖다 대고 늘어진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가죽만 남은 엄마의 가슴에선 심장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내가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잠을 잤다. 잠이 안 오는 날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날에도 아이들을 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좋아서 아이들을 껴안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안는 걸 좋아한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아무 말도 없이 다가와 안긴다.  꼭 껴안아준다.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으면 한 마디씩 천천히 말을 꺼낸다. 친구의 말에 속상했다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친구가 욕을 했다는.. 혹은 동생이 내 말을 무시했다는 말들. 가슴속에 박혀 아픔으로 남을 기억들을 꺼낸다. 마주 보고 안고 있으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등을 토닥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아이들은 한참을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 나서 손에 힘을 풀고 얼굴을 쳐다본다. 눈물 그렁그렁 달고, 빙그레 웃는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아이들은 달려와 안긴다. 상 받은 것도 반장이 됐다는 것도 나는 아이들을 안으며 알 수 있다. 꼭 안고 잘했다고 말하면 아이의 심장소리가 터질 것 같다.


어제 큰 딸이 하루종일 기운이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잠만 잤다. 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큰 딸과 같이 누웠다. 나만큼 큰 아이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팔에 힘을 주고 꼭 껴안았다. 아이는 고르게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밤새 아이를 안고 있었다. 큰아이는 나를 닮아서 유난히 안는 것을 좋아한다. 알고 있는데 가끔 막둥이만 너무 예뻐할 때가 있다. 다 큰 아이가 왜 그러냐는 말도 한 적이 있다. 어제, 오늘은 큰아이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줬다.


우리 집 부엌찬장에는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이 붙어 있다. 막둥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건데, 아무래도 엄마

한테 하는 말인 거 같다.


화를 가라앉히는 방법에도 서로 안아 주기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힘들어서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안으면 따뜻하고 포근하다.  좋다. 그래서 힘이 난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 품에 안겨 힘이 났으면 좋겠다. 엄마 품에 안겨 살아갈 힘을 잔뜩 얻는다. 따뜻한 밥을 먹고 깊은 잠을 잔다.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위로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기를...


사족 : 어젯밤 꿈에 남궁민이랑 골목에서 꼭 껴안는 꿈을 꿨다. 우리는 꿈속에서 연인사이였고, 너무도 사랑해서 헤어지기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희한한 건 내가 남궁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나온 드라마도 보지 않았는데 왜 느닷없이 내 꿈에 나타나 나를 껴안았던 것일까? 꼭 안아주는 그가 너무 좋아 깨고 싶지 않은 나는 정상일까? 깨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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