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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04. 2024

기대와 실망사이

우리 집 세 남매는 겨울방학에 수영강습을 받고 있다. 주말 9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난다. 우리 집에서 수영장까지 가려면 제주시에서 유명한 해안도로를 지난다. 우리 가족은 주말 아침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해안도로를 무심하게 지나간다.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지나가고, 사람들은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는 걸 본다. 하품하면서, 반쯤 감은 눈으로 무심하게 제주바다를 본다. 


해안도로에는 유명한(SNS에서) 가게들이 여럿 있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친다. 가게에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매일 보는 바다가 뭐? 하며, 집과 수영장만을 오간다. 그래도 꼭 먹고 싶은 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로 유명한 식당 이름을 붙인 돈카츠를 파는 곳. 수영장에 갈 때마다 가자. 가보자. 노래를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바다를 찍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반가워하며

내가 운전대를 잡은 김에 오늘 그곳에서 돈카츠 5개를 주문했다.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엄청 유명한 곳이라고 하면서 설레발을 떨었다. 주문받는 즉시 튀기는 거라 15분이 걸린다는 말에도 그저 좋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매우 배가 부른 상태다. 포장한 돈카츠를 집에 와서 먹은 건 11시. 글을 쓰는 지금은 4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꺼지지 않았다. 시원한 맥주가 당긴다.


아이들은 반만 먹고 내려놨다. 남편은 크로켓이 낫겠다는 말을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이 촉촉하긴 했다. 짜고 느끼하고 기름이 너무 많았다. 내 것과 아이들이 반만 먹다 남긴 것 3개를 혼자 다 먹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오늘 아니어도 나는 계속 그 길을 지나다니며 먹어야지. 먹어야지. 했을 것이다. 오늘 먹었으니 됐다. 이제 안 먹으면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엄청난 맛이겠지 생각한 건 나다. 내가 끌려서 먹었고, 먹고 나서 후회한 것도 나다.



남들이 하는 말에 혹해서 혹은 광고가 좋아서 끌리는 경우가 있다. 물건이 넘치는 시대다. 비슷비슷한 것들이 모여 있으니 눈에 띄려면 뭐든 해야 한다. 서점에 누워 있는 책들을 생각해 보자.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인 경우도 있지만,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 서점에서 가장 멋진 자리를 차지한 책을 본능적으로 피하는 이유다. 맥주를 급하게 따르면 거품이 많이 생긴다. 


책에도 거품이 있다. 중요한 건 적당한 거품이 맥주의 맛을 살려준다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책에도 어느 정도의 포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반면 사람들이 많이 읽으면 내가 모르는 숨겨진 매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손이 저절로 간다. 분위기에 혹해서 책을 읽고 후회하고 싶지 않은 나는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낭중지추>라는 말을 좋아한다. 주머니 속 송곳이라는 말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된다는 고사성어다. 스스로를 알리는데 능숙한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것은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믿는 옛날 사람이다. 돋보이려고 꾸미지 않아도,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내면이 강한 사람은 눈에 띈다. 좋은 글은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묵직하게 움직인다. 


두서없는 글을 썼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나는 돈카츠를 두 개 이상 먹었고, 5시간이 넘도록 소화가 안 되고 있으며, 돈카츠를 많이 먹으면 속이 느글거리고, 맥주가 당긴다는 것이다. 갑자기 유행하는 책은 뭔가 있는 것도 같고, 좋은 글을 쓰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 오늘은 입춘이다. 괜히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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