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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10. 2024

전은 여자들만 부치는 거야?

아들의 질문에 답합니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제 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생각 없이 살다가도 이맘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제부터 아이들은 설날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설날노래에는 '노랑저고리, 색동저고리, 호사하시고.'등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은 가사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낱말뜻도 모르면서, 그저 좋아서 부르고, 저는 노래를 들으며 정말 옛날노래구나. 생각하며 듣습니다. 마침 어제 우리 집 앞 전봇대에 까치 두 마리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며 말합니다. "엄마, 올해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길건 가봐요. 까치가 있어요." (물론, 이렇게 예쁘게 말하진 않았습니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게 어렵습니다. )


설에 입을 예쁜 옷을 사셨을까요? 저는 세뱃돈 담을 봉투를 사러 지하상가에 갔다가 큰아이 옷과 제 옷을 구매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충동구매였습니다. 15살이 된 큰 딸은 방학 내내 잘 먹고 잘 자더니 키가 부쩍 자랐습니다. 항상 제 옷을 탐내서 저랑 같이 옷을 입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교복을 입어서 딱히 옷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옷이 별로 없습니다. 


예쁜 니트를 두 벌 샀습니다. 큰아이와 같이 입으면 된다고 합리화를 시킵니다. 50% 세일이라는 말도 충동구매를 부추겼습니다. 아들과 막둥이 꺼는 사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엄마는 설이 되기 전에 오일장에 우리 세 자매를 데리고 갔지요. 명절 전 오일장을 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산더미 같은 물건들 속에서 엄마는 부지런히 손을 놀립니다. 매대에 쌓아놓은 옷에서 엄마가 고르는 옷들은 다 예뻤습니다. 우리 옷과 엄마 옷, 아빠옷과 신발까지 다 사면 커다란 비닐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가 아빠의 트럭 짐칸에 올라탑니다. 트럭 뒤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집에 옵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타가 덜컹거리고 몸이 흔들리면 그것도 재미있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오랜만에 소고기도 먹고, 떡도 실컷 먹고, 새 옷도 생겼습니다. 명절은 좋은 날이 분명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명절이 좋을까요? 명절 전날 하루종일 음식준비를 하는 막내며느리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상을 잘 만나면 명절에 해외여행을 간다는데, 저희 시어머니가 손으로 빚은 송편과 밤새 두들긴 고기를 드신 조상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세뱃돈을 준비하고, 명절음식을 만들다 보면 제법 흥이 납니다. 막내며느리인 저는 전과 생선담당입니다. 하루종일 전을 부쳐서 큰 형님댁에 가져갑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옆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알다시피 어린아이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그게 다 엄마의 짐이 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제법 아이들도 한몫을 합니다. 계란을 풀고, 애호박에 밀가루를 묻히고, 표고버섯에 참기름과 소금을 바릅니다. 올해 저는 세 명의 조수를 부렸습니다. 남편은? 물론 당연히 소파에 앉아 계십니다.


잠옷 입고 전부 치는 아드님


아이들이 준비하고, 제가 전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 그런데 명절에는 여자들만 일하는 거야.?"

"응?"

"전은 여자들이 하는 거지?"

"아닌데. 여자나 남자나 다 할 수 있어."

"그럼 나도 할 수 있어?"

"그럼, 할 수 있지. 해 볼래?"


우리 집 남자들은 제사나 명절날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상 하나 펴놓고 엄청 생색을 냅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키웠습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면 큰 일 난다고.


그래서 결혼초기에 저는 시어머니를 엄청 원망했습니다. 만일 제가 시어머니처럼 아들을 키운다면, 저 역시 아들의 반쪽에게 좋은 소리 듣기는 틀렸습니다. 내 눈에만 예쁜 아들이 어딘가에서 천덕꾸러기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들이라고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과 함께 전을 부쳤습니다. 아들은 소꿉장난하듯이 전을 부치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막둥이도 옆에서 꼼지락거립니다. 중2병 걸린 큰 딸은 제 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켜 놓은 티브이소리가 부엌에 들어오지 않게 우리는 K팝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전을 부쳤습니다.



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는 아들에게 집안일을 계속 가르칠 생각입니다. 즐거운 명절날 부엌에서 눈을 흘기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함께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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