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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17. 2024

토요일 오전 10시

토요일 오전이었다. 수영강습하는 아이들을 유리창 밖에서 보고 있었다. 실내에는 다닥다닥 테이블이 붙어 있고, 부모들이 수영장으로 시선을 향한 채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50분 동안 자유형과 배영과 발차기를 연습했다. 나는 가끔 핸드폰을 보다 말고 오랫동안 수영하는 아이들을 지켜봤다.

 좁은 공간에서는 의도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경우가 있다. 내 옆에 앉은 남자 두 명은 방금 수영을 마치고 나온 것 같았다. 오늘 있었던 수업과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변을 의식해서 목소리를 낮췄지만 바로 옆에 앉은 나는 오히려 집중하기 딱 좋은 소리였다.

-수영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나? 오래 안 됐어. 

-그전에는 뭘 하셨는데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지. 

-수영 잘하시던데.

-그냥 나 혼자 배운 거야. 운동도 그렇고.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셨구나

-부모님이 안 계셨는데. 그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안 해 본 알바가 없었거든. 나 진짜 고생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공하셨네요.

-22살 때인가? 내가 진짜 돈이 없어서 사채업자를 찾아갔거든. 인감도장 들고. 서류작성 끝냈는데 앞에 있던 일수하는 형이 나보고 그러는 거야. "너 이거 하면 좃되는 거야. 하지 마." 

-정말요? 모르는 사람인데?

-어, 그 사람눈에도 내가 불쌍해 보였던 거지. 서류만 내면 끝나는 거였는데, 그 형이 봉고차에 나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줬어.

-헐, 대박. 고마운 사람이네요.

-그렇지. 그다음부터는 일이 술술 풀이더라고. 산전수전 겪은 거랑 힘들게 산 거는 달라.

 말이 끊기고,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두 남자를 쳐다봤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짧은 머리에 패딩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그들의 말을 메모하는데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한 말이 맴돌았다.

무슨 뜻일까? 산전수전 겪은 거랑 힘들게 산 거는 다르다는 말은.



이십 대 초반에 사채업자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못 구해서 돈이 없었다. 신구간은 다가오는데, 방세 250만 원을 모으지 못했던 나는 딱 삼백만 원만 빌릴 생각이었다. 동생과 손을 꼭 잡고 허름한 건물의 이층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영화 속 사람들보다 더 무섭게 생긴 남자들이 있었다. 친절하게 말은 하는데 표정은 무서웠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서류작성하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부모님 주민번호와 주소를 적으라고 했다. 내가 사채업자를 찾아간 건 부모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서였다. 나는 내 이름만 적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남자는 웃으며, 형식적인 것이라고 했다. 내 이름을 적는 건 괜찮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부모님의 이름을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음에 오겠다는 말을 하고 동생과 같이 나왔다. 들어갈 때처럼 손을 꼭 잡고 계단을 걸어 나왔다. 건물 밖에 나와서야 손을 풀었는데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동생 손이 빨갰다.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방을 구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부당하거나 잘못됐다는 게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 상황에 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온갖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라는 뜻도 된다. 나는 어떤 상황에 닥치면 주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중얼거린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 하나 없이 혼자 살아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선택하려고 했다. 동전의 양면처럼 그럼에도 붋구하고는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말이 됐다.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수영하는 것을 보며, 두 남자의 대화를 생각했다. 막상해야 서른 안팎일 것 같은 남자에게서 어린 시절의 나를 봤다. 혼자 인감도장을 들고, 나쁜 곳임을 알면서도 찾아가야만 했던 절박함을 상상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지만 젊은 남자를 불쌍히 여긴 일수꾼 남자는 또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은 이미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젊은이만큼은 자신과 다르게 살기 바라며, 집까지 바래다줬던 사람. 시간이 흘러 젊은이는 이제 삶을 즐길만한 여유를 가진 어른이 되었고, 그때 자신을 도와준 일수꾼 이야기를 다른 젊은이에게 한다. 힘들 게 산 게 자랑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누군가 한 사람만 도와줘도 살 수 있다.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겨울이 지나간 것 같아 섭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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