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면? 나는 또다시 경기방 밖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응원만 할 것인가?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6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초기에 쓴 소설 3편을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떨어졌다. 다행인 건 쓰면 쓸수록 소설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1월에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했는데, 예심통과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심 기대했다. 토요일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떨어진 거라고 했다. 토요일 저녁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내가 제일 잘 썼다고 생각했던 소설이었다. 2월 초 두 번째 쓴 소설을 다른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했다. 어제 당선 메일을 받았다.
어리둥절했다. 한참 동안 천천히 메일을 읽었다. 내 소설이 우수하여 신인상을 수여한다고 하는데 후원계좌가 있었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 그런가 보다 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상 받으러 서울 간다고, 우리도 같이 서울 간다고 좋아했다.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니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어찌 됐든 내 소설이 뽑혔고, 등단한다는 말은 매혹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되고 싶었던 소설가가 된다. 누군가 내 소설을 읽었다.
문득 내가 응모한 문예지가 유튜브나 뉴스에 나오는 등단팔이하는 곳이면 어쩌지? 걱정이 들었다. 오늘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50권이 기본이라고 한다. 12,000*50=600,000.이다.
내 새끼를 세상에 내 보이는데 돈이 들 줄은 몰랐다. 오히려 돈을 주며 귀하게 데려갈 줄 알았다. 내 새끼를 두꺼운 문예지 어느 한구석에 끼워 넣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이라는 말은 매혹적이었다. 심사평도 궁금했다. 내키지 않은 마음 반과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이럴 때는 혼자만 생각하면 안 된다. 서울에 사는 블로그언니한테 전화했다. 언니는 한참 동안 내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등단을 하는 거예요. 등단을 위해 글을 쓰지는 마세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나는 소설을 왜 쓰는가? 쓰고 싶어서, 재미있어서 쓴다. 응모를 왜 하는가? 내 소설이 그럴듯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누구한테? 심사위원들한테. 왜? 그들은 공신력이 있으니까. 적어도 그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기본은 한다는 말이니까. 그렇다면 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심사위원들일까? 독자일까?
언니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생각이 정리됐다. 언니는 내게 등단만을 보지 말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도 돌리라는 조언을 주셨다. 뭘 하면 그것밖에 모르는 외골수인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언니에게 전화하길 잘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부지런히 소설을 쓰는 것이다. 내 글이 부족한 건 사실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소설을 쓸 예정이다. 소설을 쓸 때 제일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누가 상패를 주든 말든 나는 소설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