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큰 딸과 막둥이가 서쪽방에서, 나와 아들이 안방에서 잔다. 남편은 거실에서 안 들어온 지 오래다. 웃풍이 있어서 겨울이면 내용텐트를 치고 잔다. 따뜻하다.
어제 아들과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남편과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막 12살이 된 아들은 제법 그럴듯한 말상대가 된다. 텐트 안에서 별전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들은 오늘 동생에게 섭섭했던 일과 누나가 핸드폰으로 뭘 했는지, 도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종알거렸다.
근데, 아들아. 내가 도서블로그 한 지 3월이면 딱 2년이 되거든. 그동안 300권 정도의 책을 읽고 도서포스팅을 했어.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거 같아. 뭐가 달라진 게 없어.
달라졌는데.
내가?
응. 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는 분명 달라졌어. 일단 블로그이웃수가 늘었고, 브런치에서도 딱지 받았고, 또 인스타도 잘하고. 또 뭔가 엄마가 자꾸 뭘 한다고 말하잖아. 소설도 쓴다고 하고.
한다는 말만 들었지 넌 내 소설을 읽은 적도 없잖아. 자신이 없어.
엄마, 내가 배영 배울 때 겁을 먹었거든. 자유형은 좋은데, 물 위에 눕는 게 무서웠어. 나보다 어린애들이 킥판 잡고 가는데 나 제자리였던 거 알지? 그런데 엄마가 수영 그만두면 안 된다고 계속 다니라고 했잖아.
그렇지.
나 지금 배영 잘하는 거 알지?
정말 잘하지. 우리 아들.
지금 엄마는 그런 단계 같아. 초급반은 아니고, 금방 중급반에 올라온 사람. 그러니까 할 줄은 아는데 정말 잘하지는 못하는 거지. 우리 선생님이 그랬어. 수업 없을 때도 계속 연습하라고. 엄마도 그렇게 해.
더 많이 읽고 쓰라는 거지?
응, 자자. 엄마. 나 졸려.
제출날짜는 다가오는데 단편소설을 완성 못 시켜서 요즘 잠을 못 자고 있었다. 잠을 안 자면 일어나 쓰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들 옆에 누워 눈만 말똥거리기를 며칠째다. 하는 것 없이 입술은 부르트고, 할 일은 많은데 자꾸 바깥일이 생기고 있다. 겨울방학 때는 엄마 역할만 해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매일 글쓰기와 책 읽기의 맛을 알아버려서인지 할 일이 쌓여도 글을 쓰느라 묵인할 때가 종종 있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소설책을 읽는다. 그리고 좌절한다. 내가 쓰는 게 소설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슬프고 아프다. SNS에 올라온 것들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처럼 나는 좋은 소설을 읽으며 매일 좌절한다. 나만의 색깔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허점투성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언제나 부끄럽다. 나는 내 글이 부끄럽다.
아들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금방 초급반에서 올라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각하자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지 않고, 중간에 깨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내 소설을 읽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디를 손봐야 할지, 다시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일단 제출하기로 했다. 제출하고 작가님의 말씀을 듣자.
내가 쓴 글은 내 눈에는 좋아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썼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나만 알게 쓰면 안 된다. 독자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분명해야 한다. 의도가 있지만 잘 숨겨진 글. 읽으면서 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러면 안 될 텐데. 읽다 너무 궁금해서 맨 뒷장으로 넘겨보는 글.
내 소설은 너무 뻔하다. 내일까지 제출인데. 좌절이다. 그게 당연하다. 나는 이제 막 중급반에 올라온 초보자다. 소설을 쓴 지 일 년도 안 됐으면서 뭔가를 기대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자.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부족한 게 당연하다. 가고 있는 길에 목적지가 분명하고, 언젠가는 도착한다. 내가 할 일은 지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가는 것뿐이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끝은 똑같다. 언젠가는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