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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20. 2024

시어머니

내가 다니는 '극락사'에서는 어제부터 7일 동안 정월대보름 불공을 한다. 절에서 하는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다. 아이가 없을 때는 시어머니와 함께 7일 내내 절에 다녔다. 코로나 전까지는 절에서 전세버스를 대절해서 불공에 참석하는 신도들을 태웠다. 사람들이 시어머니와 함께 다니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고 갈 때는 함께지만 법당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맨 뒤에 앉고, 나는 중간에 앉아서 각자 기도를 한다. 



내가 절에 다녔던 이유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착한 며느리라고 나를 칭찬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다행히도 종교적 성향이 맞았다. 만일 내가 교회나 성당에서 마음을 위안을 삼고 의지했다면, 나는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내 선택대로 강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당에 다닌다는 이유로 절에 오지 않는 작은 형님을 이해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종교는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른 건 강요해도 될까?



시어머니는 자수성가한 분이다. 한때 제주시에서 현금부자로 열손가락에 든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제주도 땅값이 많이 올라서 부자들이 많지만, 어머님이 사업을 할 때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어머님 표현으로는 남편이 태어나면서 돈을 갈고리채 쓸어 모았다고 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명문대에 진학시킨 어머니는 그래서인지 자신의 삶의 철학이 확고하신 분이다. 어머니 눈에는 어느 자식 하나 눈에 차지 않는다. 아들들이나 며느리들이나 하는 게 못 마땅하다. 그래서 다른 집안의 자식들과 비교를 잘한다. 다른 집 자식들은 일도 잘하고 부모한테도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대우를 못 받고 사나. 하며 한탄을 한다. 



  21년째 시어머니와 앞 뒷집에 살고 있는 내게 화살이 제일 많이 날아온다. 그런데 내가 누구인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욕쟁이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욕에는 단련이 된 사람이다. 우리 아빠는 싸움해서 진 적이 없는 동네싸움대장이자 말싸움의 일인자였다. 우리 집은 돈만 빼고 다 있는 그런 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보낸다. 곱게 자란 형님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도 어머님께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산다.



 나는 글로든 말로든 풀며 산다. 시어머니흉도 제일 열심히 본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건 모두 어머님 덕분이라고. 어머님한테 무조건 네. 네. 하지도 않지만, 어머님이 밉거나 싫지는 않다. 솔직히 여자로서의 어머님의 삶은 존경한다. 어머님 눈에 나는 이상한 아이일 수 있다. 친한 것 같다가도 삐딱하게 말하고, 어머님의 말을 잘 들어주는 듯한데 할 말은 다 하는. 



 

 어제 '극락사'에 어머님과 아이들과 함께 가서 불공을 드리고 밥을 먹을 때 일이다. 점심메뉴는 흰밥과 배추를 넣은 콩국, 톳무침과 무생채무침, 잡채, 들깻가루로 무친 연근, 깻잎장아찌와 고추장아찌, 김치였다. 아이들이 먹을 만한 건 잡채와 김치였다. 어머님은 식사하는 내내 아이들에게 이것저것을 먹어보라고 야단이었다. 나는"얘들 신경 쓰지 말고 어머님이 많이 드세요."라고 말했다. 어머님이 입을 삐쭉거리더니 금세 눈을 내리 깔고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밥을 다 먹었다. 나는 다 먹은 식판을 부엌에 가져가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나중에 어멍이 한꺼번에 가져가라게."

"왜요?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가져가야죠. 얼른 가져가. "

"그런 것까지 아이들을 시켬시냐. 어멍이 빨리 먹어그네 가져가민 돼주."

말없이 밥을 먹던 남편이 거든다.

"아이들도 해봐야 됩니다게. 가져가."



아이들은 자기가 먹은 식판을 들고, 신발을 신고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와 나, 남편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다 해 주당 보안 어머니 아들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람 쑤게."

"다 안 해줬져게.  해 줄 만한 것만 해 줬주."

"그게 문제라마씸. 혼자 하게 내불어야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어머니가 간섭안 한 게 이수광?."



남편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나서 식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머님이 다 먹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님의 식판과 내 식판을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어머님과 남편의 커피를 탔다. 어머님은 커피를 마시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다른 집 자식들이 독립해서 요망지게 사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자식들은 모두 품고 싶어 한다. 몸이 뽀사지게 아파도,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한다. 한 번도 도와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식들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며느리들은 종 부리듯 부린다.  손주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다. 자신이 시집을 와서 종노릇을 했듯 며느리들도 똑같이 고생하길 원한다. 그것을 여자의 미덕으로 알고 있다. 


"이젠 세상이 변했수게. 남자들도 다 할 줄 알아야 돼. 이제라도 어머니가 마음을 조금 풀어봅써. 뭘 하든 잘한다고만 하고,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예?"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어머님 마음에 쇄기를 박았다. 어머님 생각에는 며느리인 내가 착하고 순진한 막내아들을 조종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남편이 이렇게 변하기까지 많은 사건과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어머님 집에 가서 한바탕 하소연을 들어주고 왔다.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도 이제는 연세가 드셨는지 예전처럼 화를 내지 못하고, 작은 위로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어머님한테는 죄송스럽지만, 시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어머님의 말 하나하나가 외로움의 투정이라는 게 보인다. 어머니가 점점 아이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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