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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27. 2024

27일을 기다리는 이유

고쳐야 한다는 건 아는데 참 어려운.

누군가 말했다. 돈을 모으려면 신용카드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만일 지금 당신이 신용카드를 쓰고 있다면 과감히 가위로 잘라버리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을 때는 나도 당장 카드를 자를 결심을 했다. 오십이 다 되는데 비상금하나 없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중년여성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는데 주제가 당신은 비자금이 얼마나 있습니까? 였다. 방송용인지 뭔지는 몰라도 뽀글 머리 아줌마들이 오천, 일억, 이억을 외쳤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돈이 모이는 줄 알았다. 중년은 풍요롭다는데 왜 나는 여전히 카드값 때문에 허덕이는지 모르겠다. 27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26일까지 카드를 쓰면 다음 달 10일 날 청구된다. 27일이 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지출계획을 세우고, 적어도 이번 달에는 조금이라도 달라져야지. 다짐도 해 보지만 26일이면 여전히 카드값은 줄어들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자책을 넘어서 실망하는 일이 반복된다.



뭐가 문제일까? 정말 카드만 자르면 되는 걸까? 부자들은 푼돈도 소중히 여긴다는데 이대로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내가 돈의 주인이 되기는 틀려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관념이 쥐뿔도 없었다. 부모님은 주먹구구식이었다. 농사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자연과 운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예상을 하고, 계획을 세워봐도 비와 바람과 추위와 가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집은 어떤 해는 돈을 벌어서 시시덕거렸고, 어떤 해는 돈돈돈만 하다 끝났다.



 개미는 겨울을 대비해서 여름 내내 일을 했지만, 사람은 개미처럼 쉬지 않고 일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용돈이란 생각도 못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집에서 40분 떨어진 여고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엄마는 버스비를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주말에 밭일을 하면서 받은 돈과 조각공원에서 주차요금을 받던 할아버지를 도우면 생기는 얼마의 돈으로 학교를 다녔다. 



대학교 때도 달라진 건 없었다. 자취방과 학비를 버느라 아르바이트를 쉬지 못했다. 한 학기만이라도 공부에 전념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방세를 구할 수 없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지만 나는 그 정도 능력은 되지 못했다. 학교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출석률이 낮았다. 교수님들이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다. 직장도 당장 돈을 많이 주는 곳에서 일했다. 방송국에서 새끼작가를 하면서 6개월만 버티라고 했는데 두 달 만에 그만둔 것도 돈 때문이었다. 50만 원만 받고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후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부모님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다. 돈도 없으면서 서로 사 주지 못해 난리다. 만나면 지갑에 있는 돈을 다 꺼내준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못 모으나 봐. 우린 이번 생은 틀렸어. 하며 낄낄댄다. 돈 없다고 하면서도 밥 사 주고, 술을 산다. 그렇게 살아간다.



나는 잘 모르겠다. 돈이 많으면 좋겠지만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 돈이 많아도 만족하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을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할 수는 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돈돈돈거리는 사람은 재미없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하는데, 똑똑한 사람들은 따지고 재는 게 많아서 머리가 아프다. 무분별한 소비는 나쁘지만 쓸 때는 쓰는 사람이 좋다.



그런데 나는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없어도 써서 문제다. 쓰고 나서 후회하니 그것 또한 병이다. 달마다 27일만 기다리고 있다. 이번달에는 정말 카드값을 줄이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한 달씩 살아간다. 하루살이가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듯 알차게 꽉 채워서 한 달을 산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하면서 소금쟁이가 물 위에서 수영하듯 쉬지 않고 움직인다. 좋지는 않지만 또 못할 것도 없는 시간들이다.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내 의지는 갈대보다 더 많이 흔들리지만 꺾이지는 않는다. 항상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내가 꿈 많은 베짱이인가부다. 닉네임을 바꿔야 하나.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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