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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r 02. 2024

너 T야?

기우

아들이 노래를 만들었다며 한번 들어보라고 하길래 뭐? 네가 작곡을? 피아노를 5년 친 보람이 있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아들을 쳐다봤다. 

엄마, 잘 들어봐.

어쩌고 저쩌고.. 블라 블라. 그러니까 너 T야?

그러니까 어쩌고 저쩌고... 씨부렁 씨부렁. 그러니까 너 T야?


평소 악동뮤지션과 비오를 좋아하는 아들은 힙합도 아니고 랩도 아닌 말을 흥얼거리다 후렴구처럼 그러니까 너 T야? 를 스타카토로 강조하면서 낄낄댔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아들이 하는 말(차마 노래라고 부를 수 없는)에는 누나와 여동생을 빗대서 놀리는 말이었다. 


중학생인 딸은 MBTI신봉자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MBTI검사를 하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니 따라쟁이 막둥이도, 누나가 하는 말은 무조건 따르는 남동생도 덩달아 MBTI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아이들은 나와 남편의 MBTI를 검사했다. 


성향이 비슷한 건 알고 있었는데, 결과를 알고 나니 신기했다. 아들과 나는 ENFP다. 남편과 큰 딸은 ISFP이고, 막둥이는 ISTJ다. E는 외향적이고, I는 내성적인 건 알겠는데, N부터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와 아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말하는 게 쉬운 반면, 세 사람은 집순이에 상대방이 말을 시키지 않으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인 것만 확인했다. 



 여기서 아이들이 주목하는 건 세 번째 알파벳이었다. 나와 아들과 남편은 F다. 즉 공감능력이 뛰어난 감정형 인간이다. 막둥이는 이성적이고 논리 정연한 T다. 문제는 큰 딸의 성향이 F에서 T로 변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그 부분을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누나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친구 때문에 T가 됐다며 배신자라고 했다. 오빠가 소리를 질러도 막둥이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나는 사람의 성향은 변할 수도 있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16가지 MBTI로 분류하기에는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모르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나보다 더 외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진다. 그런 면에서 성향은 상대적이다.  또한 감정을 중시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아이들 문제 앞에서는 누구보다 논리적인 사람이 된다. 타고난 성향이 있다 해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중인격이 아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마음이 살고 있다.


아들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노래가 재밌어? 왜 재미있을까? 그런데 네 노래를 T 인 사람이 들어도 재미있을까? 노래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놀리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닌데. 너는 재미있다고 하는데 왜 누나는 그만하라고 듣기 싫다고 할까? 꼭 누나뿐이 아니야. 네가 하는 어떤 행동을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네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그게 배려야. 너만큼이나 누나도 동생도 소중하니까.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아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나는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아들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사랑해.라고.


얼마 전에 넥플릭스 영화 <사채소년>을 봤다. 고등학생이 학교 내에서 사채놀이를 하다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영화였다. 큰 딸이 커가면서 학생들이 나오는 영화를 일부러 찾아볼 때가 있다. 자극적인 소재에 인물들의 행동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영화라는 것을 감안해도 보기 불편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며 내가 주목한 것은, 고등학생 아이들의 삶 속에 부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은 어른들이 쳤는데, 아이들이 수습한다.  


 처음부터 나쁜 아이는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속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은 귀하고 소중한 것일수록 강하게 그리고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넘쳐나는 시대다.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환경 속에 사는 아이들이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크고 단단한 아이로 자라게 해 주고 싶다.  엄마로서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때 규제를 해야 하나 항상 생각한다. 


어른의 그림자를 밟으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데  마음뿐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나이만 많지 여전히 부족하고 한심한 인생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내가 못하는 걸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 전에 내 말과 행동을 한번 더 돌아본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아들이 내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보이는 것보다 세상은 넓고, 유튜브에 나오는 게 진실만은 아니며, 세상에는 네가 알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그릇이 크고 단단하길 바란다. 그래서 먼 훗날 폭풍우를 뚫고 묵묵히 걸어가거나, 비바람을 피할 집을 제 손으로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나이 많은 엄마는 이게 문제다. 작은 일에 너무 멀리 나간다. 과하게 반응한다. 이것도 F형인간의 특징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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