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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Feb 29. 2024

문장강화, 이태준

글쓰기의 기본


작가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09년 망명하는 부친을 따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가 그해 8월 부친의 사망으로 귀국하였다. 1912년 모친마저 별세하자 철원의 친척집에서 성장하였다.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휴교의 주모자로 지적되어 1924년 퇴학하였다.


1924년 학교 신문 [휘문 2호]에 단편동화 「물고기 이야기」를 처음 발표했다. 1925년 문예지『조선문단』에 「오몽녀」가 입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7년 신문·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공기만을 먹고사는’ 궁핍한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개벽』과 『조선중앙일보』의 기자, 『문장』지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1933년 박태원·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하였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출간을 시작으로 『가마귀』, 『사상의 월야』, 장편소설 『해방전후』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30년대 전후에 아동잡지 [어린이]에 발표한 많은 동화들은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고 있다. 해방 후에는 문학가동맹, 남조선민전등 조직에 참여하다가 1946년 월북하였다.


‘구인회’ 활동 과거와 사상성을 이유로 임화, 김남천과 함께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어 함흥노동신문사 교정원,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파고철 수집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60년대 초 산간 협동농장에서 병사하였다는 설이 있다. 저서로 단편소설집 『달밤』 『가마귀』 『복덕방』 『해방 전후』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딸 삼형제』 『사상思想』, 수필집 『무서록』, 문장론 『문장강화』 『상허 문학독본』 등이 있다.



시에는 '지용', 문장은 '태준'이라는 말이 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고전적인 글쓰기 교본이다. 1939년 2월 이태준이 주관하던 <문장>지 창간호부터 연재되다가 9회로 그치고 이듬해 문장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1930년대 한국 문학은 한문에 토를 단 식의 애국계몽기 문체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발랄하며 현대적인 작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쳐갔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국어교육을 괄시하고 끝내 '조선어말살'정책까지 시행했던 일제치하 속에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주제로 <문장강화>를 썼다. 이는 문화적 암흑기 시대에 민족교양을 이바지함과 동시에 민족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문장강화>는 글쓰기 책이지만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지 예문을 들어 보여준다. 예문의 앞뒤로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1930년대와 1940년대 발표된 작품들 중에 뛰어난 작품들을 이태준의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은 선물 같은 덤이다.

우리는 글과 말이 다른 민족이었다. 오랫동안 한자를 사용하여 글을 썼다. 우리의 정서와 상황이 다르므로 한자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에는 한계가 있다. 조선 후기에 들면서 한글문학이 등장하지만 서민문학, 아녀자의 문학으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한민족의 얼을 한글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어떤 문장을 써야 할 것인가? 더 나아가 운문과 산문의 차이부터 좁게는 문체와 각종 문장의 정의까지 <문장강화>는 잘 만들어진 글쓰기교본책이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 볼 글쓰기의 기본책이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논술을 배운다. 대입을 준비할 때도 논술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리포트를 쓰거나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모두 글쓰기에 해당된다. SNS에 올리는 짧은 문장들도 이왕이면 잘 쓰고 싶다. 이런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듯 시중에는 글쓰기책이 많이 나와 있다.


작가들은 저마다의 글쓰기비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포스팅했던 <문장의 비결>과 <문장강화>는 기본을 탄탄하게 다져주는 책이다. 기본이 있으면 어떤 글이든 잘 쓸 수 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순식간에 써 내려갔음에도 걸림이 없다. 그런 글을 쓰면 작가는 흐뭇하고 독자는 편안해진다. 이게 무슨 뜻이지? 갸우뚱거리는 글은 개인적으로 지양한다. 나만 아는 글 또한 좋은 글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읽힐 글은 쉽고 명료하며 상쾌하게 읽히는 책이다. 술술 읽어 내려가다 어느 순간 무릎을 치거나 머리가 띵해지는 경험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좋은 글이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좌절하다 다시 읽는다. 끝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다시 캄캄해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내 글이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형편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글에 감탄하다 보면 갑자기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오래된 책들을 읽는다. 편안하고 밝은 곳에서 쓴 글이 아니라 작은 골방에서 60초 백열등 같은 주황색불빛아래 앉아 눈 비비며 썼을 글들. 더 올라가면 호롱불이나 촛불아래에서 써 내려간 글들을 읽는다.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써 내려간 글보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들을 읽는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 이럴 때 읽으면 좋아요

문장을 단단히 다지고 싶을 때

▶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글로 드러내고 싶을 때

▶ 1930~40년대의 좋은 글을 한꺼번에 읽고 싶을 때

▶ 갑자기 국어공부가 하고 싶어질 때


※국어시간이 너무 졸렸던 기억이 있거나 오래된 글들은 고리타분하고 따분해. 하시는 분은 과감히 패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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