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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마누 Mar 09. 2024

동상이몽

 J와 극 P가 함께 살면 생기는 일

제주도 사람들은 가끔 육지에 나간다. 놀러 가거나 볼 일이 있거나 병원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예약하고, 배를 알아본다. 요즘은 저가비행기가 많아져서 제주도를 오고 가는 게 심상한 일이지만, 아시아나와 대한항공만 있었던 때는 비행기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공항에 가기까지 모든 과정에 공을 들였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육지에 혼자 나가본 적이  없다. 육지남자를 만난 적도 없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서울남자가 일주일 동안 따라다녔는데, 나보다 더 예쁜 손과 사근거리는 목소리를 견디지 못했다. ) 


이모 두 분이 서울과 경주에 살아서 가끔 엄마와 둘이 비행기를 탔다. 결혼도 제주도 남자랑 했고, 아직까지 아픈 데도 없어서 그런지 육지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중학생 딸이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김포공항과 좀 친해지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


 

 여행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곳에 가는 걸 즐긴다. 새로운 음식과 낯선 풍경들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반면 남편은 안정되고 편안한 걸 좋아한다. 불시에 일어나는 일, 갑자기 생긴 약속, 번개만남 같은 걸 싫어한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도 닥치면 당황하는 스타일이다.



 

 제주에 살 때는 성향이 판이하게 다른 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어도 제주 안에서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감탄하고, 남편은 가끔 일탈을 꿈꾸며 우리 부부는 제주에서 잘 살고 있다.


 문제는? 여행을 갈 때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8번의 해외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때마다 '인천공항에만 도착하면 당장 이혼해야지.' 하며 돌아오곤 했다. 


 출발 전부터 걱정으로 잠을 못 자는 남편은 내가 다 싸놓은 캐리어를 풀어놓고, 몇 번이나 확인하는 행동을 수시로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보라카이에 갔을 때는 샌들과 아쿠아슈즈까지 15켤레의 신발을 챙겨서 내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 약봉지가 캐리어 한쪽을 차지한 사람이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거기서 사면 된다고 말하는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모든 일에 대처하겠다는 남편의 마음을 나는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가기 전부터 싸우기 시작해서 출발하기 바로 전날이 폭발일보직전이 된다.


 

 이번 주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우리 가족은 짧은 육지여행을 간다. 3월은 막둥이의 생일이 있는데, 10살 된 기념으로 '에버랜드'를 외쳤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과 기준을 정했는데, 그건 10살과 20살에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큰 아이는 10살 생일에 키즈카페에서 반 아이들을 모두 불러 생파를 했다. 아들은 코로나 시국이라 친구들을 부르지 못했다. 대신 카라반에서 2박을 하며 불멍을 실컷 했다. 언니와 오빠의 생일을 지켜보며 막둥이는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일에 뭘 해야 언니, 오빠를 이길 수 있을까? 막내의 욕심과 언니, 오빠의 사심이 들어가서 나온 게 '에버랜드'였다. 


 국민학교 때 엄마랑 '서울대공원'에서 사자와 호랑이를 봤던 기억이 있다. 또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는 서울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죽을 뻔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따라간 것이다. 해외여행 역시 패키지로만 다녔다. 내 역할은 내리라면 내리고, 먹으라면 먹고, 사라면 사는 거였다. 이렇게 교통부터 숙박, 식사와 이동수단까지 혼자 다 정하는 것이 처음이다.


 나는 신나게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 문제는 꼼꼼해도 너무 꼼꼼한 남편이었다. 남편은 요즘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놀이동산을 다닐 생각을 하니 너무 불안하다며 잠이 안 온다고 한다. 나도 잠이 안 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건 면세점에서 살 화장품과 에버랜드에서 입을 옷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본다. 나는 정작 움직이는 건 없으면서 걱정만 하는 남편에게 적당히 하라고 말한다. 오늘 저녁만 해도 남편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승강기에서 떨어졌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설명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일요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육지에 간다. 우리 가족끼리 처음 떠나는 여행이다. 체험목표를 '다른 지역 체험하기'라고 적었는데, 실은 지하철체험이 더 정확한 말이다. 이번 여행이 성공하면 가을에는 큰 딸이 좋아하는 서울탐방을 할 예정이다. 경복궁과 덕수궁에 꼭 가고 싶다는 큰 딸을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제주도 촌년은 지하철을 탈 게 걱정이다. 


그런데  잘못 타면 내려서 바꿔 타면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좀 징징대겠지만 그것도 경험이 되고, 나중에 웃으며 말할 소재가 된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면서 몸으로 익히면 된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아무 문제없는 여행도 없다. 남편이 짜증만 안 냈으면 좋겠다. 일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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